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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월 00일을 기록

관계에 대한 잡담A - 정도 즈음일까 - 양말 프로젝트도 끝이 나고 이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찾아 왔다, 고 우리 디자이너그룹 실장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어제 우리 직원들끼리 가진 회의 말미에 연말 계획에 대해 짧게 얘길 했는데, 여행이라던가 술자리 등등이 화제에 올랐다. 짧은 1박2일 코스로 제안되었던 춘천 중도관광지엘 가는 것이 거의 확정이 되었는데 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아무런 감흥이 없다가 오늘 아침에 문득 중도를 떠올리니 제법 흥미가 생겼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특별히 여럿이서 어데 발길을 향하는 것이 정말 귀찮고 싫증이 났다. 하물며 친한 중, 고교 동창들 모여 기차여행, 바다여행 등등에도 나는 끝내 한번도 가질 않았으니까. 되도록 혼자 있는 게 편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선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민망하게 만들거나 내멋대로 .. 더보기
술과 자리가 더해지는 곳에 태어나 지금까지 한 달에 열 차례가 넘는 술자리는 가져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11월부터 12월 현재까지 정말 잦은 술자리에 나를 앉혀 놓았다. 소주, 맥주, 와인, 칵테일- 종류에 상관 없이 위 속으로 술 따위가 끊임 없이 차올랐다. 최근의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행동하는 게 싫다, 라며 집 안에 혼자 있을 적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두고 여러가지 일들을 벌려두었다. 하지만 결국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귀를 즐겁게 하거나 영화나 드라마 등에 시선을 맡겨두고선 하루를 할애하기 일쑤였다. 사실 2011년의 나는 거창한 인생의 단면 속에서 내가 어찌 해볼 수 없는 어려운 시기라는 핑계에 가둬 두었다. 나는 아무런 행동조차 하질 않았다. 몇몇의 작은 결과물을 꺼내 놓고선 나는 적어도 이런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 더보기
연등에 걸린 우리 늦은 저녁이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앞에서 그를 만났다. 내 손에는 일회용 도시락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우린 도시락을 편의점에서 함께 먹었다. 난 좀 더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도시락을 비우자마자 자리를 떠났다. 그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번호조차 확인되지 않은 버스엘 올라탄 나는 종로 어디쯤엔가 목적지 없이 내려 버렸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날씨 탓이었는지 거리가 조용했다. 나는 그렇게 발이 닿는대로 정처없이 걷다가 무게감 있는 조명에 빛을 발하는 목조 구조물이 보였다. 처음엔 조선시대 기념관 즈음이라도 되는가 싶어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는데 알고보니 사찰 입구였다. 그 옆에는 영문으로 큼지막하게 TEMPLE STAY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찰 안으로 들어서니.. 더보기
낯선 결혼식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첫 만남이 있다. 고등학생 무렵 A와 나는 친구의 친구를 거쳐 알게 되었다, 라고 추측할 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지 3학년이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서로의 삶에서 우리는 변두리에 있었고 그래서 연락이 소원하다고 딱히 섭섭할 이유도 간절할 이유도 없었다. 일 년 그리고 몇 달에 한 번 꼴로 각자의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하는 것 - 내용이래봐야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단체 문자 혹은 가끔씩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별 의미 없는 잡담이 짧게 오가는 정도 - 뿐이었다. 그렇게 7 여 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 A가, 내게 전화를 했다. 결혼식이 있으니 꼭 와달라는 거였다.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쾌했다. A는 유쾌한 친구였구나. 둘 사이를 거친 시간이 그 친구가 어떤 사람.. 더보기
다시, 꿈 1. 작아지는 또 다른 세상 몸이 작아진 다섯 남자들은 또 다른 세계로 공간이동을 하게 된다. 몸이 작아져 서로 '아이들'처럼 생각된다. '나'는 친구와 함께 유명 가수팀들의 무대공연 뒤켠에서 놀다가 순간이동을 한다. 그리고 마침 도착한 곳에서 아이들은 큰 괴물의 애완동물 겸 비상식량이 되어야만 했다. 권위적이고 무서운 괴물로부터 몰래 지혜를 발휘해 노란 공사용 헬맷을 타고 도로로 빠져 나온 아이들은- 2. 멸망하는 또 다른 세상 나는 다시 또 다른 세계로 공간이동을 하게 된다. 이 곳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 멸망을 앞둔 세계다.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두, 세 번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었는지를 알고 있다.(그리고 그 끝에는 항.. 더보기
짓밟힌 땅 위로 솟은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사물을 볼 적에 내가 알고 있는 것(형태, 특성)과 가장 근접한 것으로 인지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낯선 것을 익숙한 세계로 들여 놓지 않으면 불안을 느낀다. 인식에서 불확실성은 그래서 늘 위태롭다. 개체에 대한 인정의 조건은 그래서 익숙함이다. 인정되지 못한 세계는 파괴되거나 철저히 소외당한다. 더보기
A의 꿈과 아버지 이야기 #1 너는 꿈을 꾼다. 너는 꿈에서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오랜 시간 아버지가 기르다 사고로 죽은 강아지 J를 만난다. 한낮, 서울 외곽의 한적하고 푸근한 동네. 경사진 길목 한 모퉁이에 그들이 있다. 너는 어머니와 강아지 J를 데리고 작은 중화요리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음식을 주문한 뒤 너는 둘을 관찰한다. 강아지 J는 살아생전과 달리 굉장히 얌전했는데 장난기와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치료하지 못했던 백내장 걸린 희멀건하던 왼쪽 눈은 고운 갈색 눈동자다. 어머니는 화장기 없는 얼굴, 적당히 곱슬진 긴 머리를 가볍게 어깨 아래로 내린 모습이다. 부드러운 회색 가디건과 원피스 차림. 네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때보다 좀 더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너의 어머니는 여.. 더보기
연애를 담은 흔적 연애를 담은 흔적 샐러드 보울의 대표 재환이 형의 사진 속 표정에는 연애를 하는 냄새가 피어 오르고 있다. 연애를 갓 시작한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모든 일이 잘 되고 아무 걱정 없이 무사평온한 순간과 맞닿아 있는 시간. 결국 취재를 하러 찾아 갔지만 인터뷰는 하지 못하고 풋풋한 연애를 담은 흔적만 남았다. 사랑의 꽃(1994.5.1 발매) / 이동원 가난한 내마음에 노란꽃을 심어주오 가난한 내꿈속에 빨간꽃을 심어주오 사랑했던 기억을 화분위에 곱게심어 어여뿐 그대모습 다시보게 하여주오 사랑으로 메말라진 나의 화분에 아름다운 그대모습 꽃으로 피게하고 오~~오 사랑했던 여인이여 노란꽃을 심어주오 사랑했던 여인이여 빨간꽃을 심어주오 사랑으로 메말라진 나의 화분에 아름다운 그대모습 꽃으로 피게하.. 더보기
앵글 선반 : 과정 새로 옮긴 작업실에 쓸 테이블 만들자며 불렀던 자리엔 테이블이 아니라 4단짜리 앵글 선반을 만들 재료들이 쌓여 있었다. 다른 디자이너들과 공동으로 쓰는 곳. 퇴근하기 한 시간 전 일찍 넘어오는 핑계 삼아 대신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리라 얘길 했지만, 선반 만들면서 디자인 어쩌고 저쩌고 하며 인터뷰 하긴 힘들었다. (본래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 진행하는 동안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했는데 말이지) 재료와 도구가 있고 방법이 있었다. 무엇보다 목적이 있었다.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결과는 또 다른 결과를 위한 과정이었다. 뭐가 되었건 끝으로 가면 사람이 즐겁게 살기 위한 것이 목적이겠다. 그러니 모든 과정은 즐거움을 향한다. 오늘 나는 나를 위한 즐거움을 .. 더보기
이태원 구석진 골목에서, 내 마음을 제봉틀 바늘에 끼워 넣을까. #1 내가 찾아 간 그들 작업실은 온통 흰색이었다. 이미 칠을 한 지 한 달이 지나 벽면에선 이미 페인트 냄새가 남아있질 않았다. 부산에서 열렸던 BITFAS 행사 이후 근 2주 만에 만난 SUIN과 Salad bowls 디자이너 두 분은 그새 연인이 되어 있었다. #2 올 봄, 이태원 주민시장엘 다녀온 뒤론 주욱 이태원 골목 동네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올 겨울 즈음엔 나도 여기에 머물고 있을까. #3 블로그에 쓰는 글 제목에서 날짜는 생략하자, 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루의 기록을 게시물 한 곳에 죄다 담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숫자에 강한 인간이 아니야. 글을 쓰는 것이 점점 단단하게 뭉친 근육 같아져서 되도록 매마른 듯한 단서들은 버릴테야. #4 미안한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