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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월 00일을 기록

낯선 결혼식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첫 만남이 있다. 고등학생 무렵 A와 나는 친구의 친구를 거쳐 알게 되었다, 라고 추측할 뿐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지 3학년이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서로의 삶에서 우리는 변두리에 있었고 그래서 연락이 소원하다고 딱히 섭섭할 이유도 간절할 이유도 없었다. 일 년 그리고 몇 달에 한 번 꼴로 각자의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하는 것 - 내용이래봐야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단체 문자 혹은 가끔씩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별 의미 없는 잡담이 짧게 오가는 정도 - 뿐이었다. 그렇게 7 여 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A, 내게 전화를 했다. 결혼식이 있으니 꼭 와달라는 거였다. 목소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쾌했다. A는 유쾌한 친구였구나. 둘 사이를 거친 시간이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시켜 주지는 못했다. 문득 A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는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건축학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라는 정도의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도 벌써 몇 해 전 우연히 오래 통화를 한 일이 있었을 때 알았던 얘기였다) 그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우리는 식이 열리기 몇 일 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

약속 당일, 나는 퇴근을 하고 곧장 상수역으로 향했고 그는 집에서 갓 나와 역 앞에서 마중을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곧장 알아보았다. 그 표정을 보자, 괜스레 오래된 불알친구라도 만난 듯 나도 마냥 신나 손뼉을 쳤다. 우리는 일식집에 가 식사를 했다
.

나는 결혼을 앞둔 A가 짧은 연애기간을 두고 빠르게 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예비신랑의 귀여운 면, 성격과 짧은 시간 동안 혼수를 준비했던 사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몇 년 동안이나 서로 연락을 계속 끊기지 않고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서로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하려 애를 썼다. 두어 번 봤다, 라고 A는 말했지만 나는 우리가 실제로 만난 적은 단 한 번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십 년 가량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우리는 식사를 끝낸 뒤 악수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내 손에는 새하얀 청첩장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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