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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월 00일을 기록

시대유감 (時代遺憾)

빅데이터 시대, 지난 2013년 한 IT 저널에서는 하루 중 쌓이는 데이터 양이 지난 인류의 5,000년 역사의 양과 동일하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거대한 정보를 쌓으며 비대하져 가고 있다. 정보는 넘치고 삶은 보다 빨라진다. 매체에선 '여유 있게 살라' 외치지만 실상은 '더욱 가속하라' 부추긴다. 느린 것은 실패이고, 빠른 것이 보통이다. 나와 당신의 만남 또한 마찬가지. 짧은 시간 연소하는 감정을 천천히 피어 올리기도 전 우리는 서로를 일반화된 특징들을 읽고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너와 내가 계속 관계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


작년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이 900만 명을 돌파하며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관상은 사전적 의미로 '수명이나 운명 따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생김새'를 뜻한다. 예부터 우리는 관상 뿐 아니라 사주, 역술, 손금 등으로 나와 상대의 운명을 점치곤 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자신과 타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배경을 통해 알아보는 것. 지금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과거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작금에 이르러 사람들은 혈액형, 별자리 등 3류 과학 도서들의 유입으로 '나와 타인의 삶'을 더욱 빠르게 읽기를 원한다. 그 읽기가 끝나는 순간, 더 이상 본질을 판별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얘기할 틈도 없이 관계마저 연소된다.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더하던 시대에서 가벼워진 시대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언어는 가볍고, 이미지는 강렬하다. 자신의 외모 또한 포토샵 다루듯 성형외과에서 교체한다. 삶의 본질이나 정수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타인이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이 시대는 참으로 유감이고, 십 여분 만에 키보드로 때려쓴 이 글 또한 참으로 유감이며, 이조차 빅데이터 속으로 의미 없이 던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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