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POTSTUDIO , Designer Kim Sujinn “바람의 흔적”
요즘 거리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작년 봄 즈음엔가 한국 바이어를 찾은 한 해외 디자이너가 가로수길 거리를 걷는 소위 옷 잘 입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 그런데 보이는 건 트랜드 뿐이다.”
옷에는 자신의 취향 그리고 삶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좋은 옷이란 바로 그런 흔적은 담은 것이다. 또, 좋은 이야기와 흔적이 담겨 있는 옷이라도 내가 공감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시선이나 취향에 떠밀려 입는 건, 가짜 스타일이다. 아직 사람들은 옷을 입는 법만 알고 옷을 읽는 법을 모른다. 그건 디자이너 또한 마찬가지여서 훌륭한 옷을 만들고서도 지나치게 주제에 함몰되어 버리거나 또 누군가는 이야기만 남고 옷이 보이지 않는 이 또한 있게 마련이다.
김수진 디자이너가 전개하는 소울팟스튜디오의 옷은 지난 7년간 그 균형을 쌓으며 해마다 담대해졌다. 다른 무엇도 닮지 않은 채 호젓이 단단한 세계를 만들어 온 그의 옷을 내가 처음 본 것은 지난 2012 봄 여름 컬렉션 때였다. 서울패션위크 현장의 작은 공간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쇼, 그때 느낀 건 ‘바람’ 이었다. 그건 도시의 어떤 옷도 아니었고 한국 전통이라던가 아방가르드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옷의 곳곳엔 바람의 흔적이 느슨하게 여미어 있었다. 컬렉션을 보고 난 후 그 무겁고도 잔잔한 여운이 못내 가슴을 떠나질 않았다.
옷이 입을 열다
“한창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사실 미디어아트와 관련해 어떤 일을 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각 학과의 좋은 강의들을 많이 찾으러 다녔다. 도강도 했다. 딱히 학구열에 불타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대학이 내 직업의 기준이 아니라 내게 맞는 도구를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라 생각했다. 내게 중요한 건 ‘직’보다는 ‘업’이었다. 인문학 수업도 많이 들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전공과목보다 일반선택이 더 많았다. 미디어 쪽도 사실 그 이전에 다른 학과에서 중간에 변경했던 거였고, 마지막엔 영화로 졸업했다.”
스승도 없이 패턴에서 봉제에 이르기까지 저를 스스로 스승 삼아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한 그의 옷은 그냥 옷으로 남지도 않고 주제와 패턴, 원단 사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더 깊숙이 들어갔다. 다양한 호기심과 인문학에서 기인한 그의 사유와 구조주의적 작업 방식은 옷의 뼛속부터 피부에까지 온전히 입혀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옷을 입는다면 옷은 생각과 이야기를 입는 것이다. 한 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옷을 읽는 법 혹은 옷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울팟 스튜디오에 매료되어 강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옷 읽기’의 시도가 있다.
“지금까지 대다수가 컬렉션을 보고 나서 옷의 구조주의에 대해 말하는 건 인문학의 영역이지, 패션 본연의 기능은 아니라고 생각해 온거 같다.
만약 내가 공산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라면 굳이 그런 접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상황에 맞는 조건에 부합되게 옷을 만드는 게 맞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작업은 굳이 캣워크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는 옷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컬렉션의 깊이는 깊어지는데 입혀지는 건 갈수록 쉬울 수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구매할 사람이 옷 자체 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깊이 들어가보니 저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작, 남자의 옷
“본래 소울팟스튜디오는 유니섹스로 전개했다. 어느 순간 여성복만 전개하다 보니 초창기 남성 고객들이 계속 요청을 해오더라. 남자옷 좀 제발 하라고. (웃음) 현재는 오더메이드로만 진행하고 있다.”
소울팟스튜디오가 여성복으로 전환하게 된 까닭은 자연스러웠다. 유니섹스의 경우 소재 선택의 제한과 가격대를 형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그는 결국 여러 노선 중 하나를 선택했다. 여성복으로 전환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폭이 더 넓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좀 더 완성된 남성라인을 전개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재 일부 남성을 위한 의상이 컬렉션에 등장하고 또 일부 여성복은 남성이 착용 가능하도록 재설계를 통해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컬렉션은 전부 주문을 받아 진행한다. 여성 분들의 경우 컬렉션 원본 의상으로부터 기장 수선, 컬러 및 소재 등을 변경하는 등의 세미오더가 대부분이고 남성 분들의 경우 별도로 전체적인 견적을 받는다.”
바람, 비원, 창 그리고 집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2013 가을 겨울 컬렉션인 "집으로 가는 길"은 착장을 통해 연결되는 의상을 순차적으로 벗어내고 덜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단순히 무드를 만들기 위한 착장이 아니라 각각의 의상들이 연결성을 가지도록 유도했다고 김수진 디자이너는 말한다.
“색상과 양식 설계에서부터 계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보통은 컬렉션 오더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나지만 우린 반대로 무겁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난다. 이렇게 덜어낸 마지막 장면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순환구조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단단하고 건축적인 늬앙스의 아우터가 등장한다. 그렇게 겹겹이 벗겨 내는 과정에서 전위적인 요소들이 드러나는 유닛(의상)들이 보이지만 그마저도 다 벗겨 내었을 때 순수성을 지닌 의상이 등장한다. 이게 바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고 집인 셈이다. 그리고 ‘도착한 집’이 아니라 ‘집으로 향하고 있는 여정’ 자체를 포착하려했다. 집에 대한 상징이나 은유를 좀 더 확장한 셈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한 컬렉션으로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서문의 성격을 띈 추계에 이어 다음 컬렉션까지 다룰 계획이다.”
브로셔 속 이야기
김수진 디자이너의 브로셔 및 초대장 등은 매번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앞서 언급한 컬렉션 “집”의 브로셔 경우 표현하고자 했던 순환구조를 상징하는 의상이 배열에 따라 점차 덜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던가, 디지털 프린트한 잘게 자른 마(삼, 아마, 모시풀 같은 초피섬유로 실을 자아 만든 천연직물 등을 이른다) 소재 초대장과 첫 컬렉션부터 꾸준히 써 온 직접 쓴 글귀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2013 FW collection "집으로 가는 길" 브로셔 이미지 중에서 @soulpotstudio
“글들은 항상 직접 쓴다. 룩북에서는 그 글귀를 첫 장 부터 마지막 장 까지 자간을 두어 완성하고는 했는데, 어찌보면 이 옷들은 이 문장 속에 단어들 인 셈이다. 그 글자 사이의 공간이 주는 각각의 느낌과 의도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2012년 봄 여름 컬렉션 ‘비원’ 당시엔 마 소재 원단에 글자를 디지털 프린트하였다. 그리고 방향제를 뿌렸다. 잔디 내음이 나도록. 그 잔디향은 또 컬렉션 무대를 가득 채웠다. 초대장의 향을 따라 그 공간으로 이어져 온 느낌을 주고 싶었다. 데메테르(Demeter Fragrance Library : 조향사 크리스토퍼 브로시우스가 1996년 시작한 향수회사로 현재 160 여 종의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향들을 보유하고 있다)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후 컬렉션 ‘여백’ 당시에는 ‘흙’ 향을 채웠다. 이런 시도가 처음이었고, 향으로 컨셉을 전달하는 것은 협찬사의 입장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거 같다. 그러나 그 다음 컬렉션인 창 때는 더 이상 뿌릴 향의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참에 데메테르와 함께 조향을 할까. (웃음)”
2012 SS collection "비원" @soulpotstudio
불행, 욕심, 휴식
김수진 디자이너에게 요즘 마음이 편안한가에 대해 묻자, 과거 미술과외를 할 무렵의 얘길 들려 주었다. 그때 그는 낮에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아이들을 만나 미술과외를 했는데 직원할인으로 매번 빵을 사다 수업을 받는 아이들에게 주었다는 거였다. 그렇게 버는 대로 빵을 사선 아이들에게 죄다 지출하였는데 그래도 그때 마음은 편안했다고 했다.
“내가 가진 욕심을 다 잡으면서 살다 보면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분명 무얼 하나 취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 어떤 한 기회 속에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더 힘들어 지게 마련이다. 이미 브랜드를 시작하고 첫 고통이 왔을 무렵, 다짐했다. 그저 나만의 신화를 쓰면 된다고. 앞서려 하지 말자고. 무얼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면 현재의 내 삶을 챙기지 못하는 것 같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세번의 메인 컬렉션과 방송, 프리컬렉션 까지 할 동안 마음 편히 몸을 뉘인 적이 없다. 이젠 좀 내 삶에 공간을 내어야겠다.”
봉사활동 혹은 멘토이거나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기관이 있다. 그런 곳에서 그들 멘토가 되거나 지식봉사를 하는 것, 단순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뿐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는 봉사활동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대중들이나 업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전달하고 나면 그저 만연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는다. 자신의 브랜드를 가진다는 것은, 사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일이 아니다. 무언가 지켜내야 한다는 건, 그만큼 두 다리를 옭아매는 것이기도 하여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일도 적고 으레 어디를 찾아가는 일마저 적어진 탓이 크다고 고백했다.
“지극히 혼자인 시간이 분명 필요하고 대부분 책을 읽거나 영화 보는 시간이 많다. 요즘엔 충만함, 충족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함께 살고 있음을 느끼고 싶은 거다. 서로 부족한 빈 자리를 내어주면서.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모양새가 다를 뿐이지.”
파리로의 선택 그리고 세일즈
“파리 현지의 세일즈 쇼룸에서 전반적인 세일즈를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하게 된 배경에는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서 졸업 디자이너 중 한 명을 뽑아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그렇게 마켓을 결정하고 한 팀이 될 쇼룸을 결정하는 일. 계약하는 과정부터 세일즈 준비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길었고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부담이 크다. 아무래도 지원사업이다 보니 이번에 내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이라는 기회의 가능성은 작아진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원기간 대비 성과의 기준문제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더 집중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상 유럽 시장의 경기침체로 싸늘해진 분위기에 조심스러웠던 그는 전문가들과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얘기와 고민을 나눠야 했다. 뉴욕 시장과 유럽 시장 둘 중 하나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는 결국 파리를 택하게 되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도, 바이어의 예산은 크게 변화가 없다. 다만, 새로운 신인에게 모험을 걸 비율이 작아졌을 뿐이다. 또, 현재 유럽 사정이 좋지 않아도 뉴욕 바이어들은 바잉을 위해 유럽을 찾아오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고심끝에 결정한 파리에서 컬렉션 포트폴리오에 대해 좋은 평가들이 들려왔다. 특히, 브랜드가 가진 가치관이나, 성향, 배경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를 보는 것은 그들의 높은 문화적 이해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돌직구를 던져보는 거다. 6개월의 기간만으로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수주로 연결되어 브랜드에 경제적 도움이 되지않더라도, 이 진행과정을 몸소 겪을 계기를 만들어 준 것 만으로도 큰 지원을 받았다는 마음이 크다.
소울팟스튜디오 그리고 김수진의 2013년
“해외 세일즈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고 또,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주제로 컬렉션을 진행하는 것. 또 디퓨전 라인(Diffusion Line : 상위 라인에 비해 저렴한 금액대의 제품)의 크기를 키우고 대중화 시키는 것.
이 디퓨전 라인이 추구하는 컨셉은 웰메이드 베이직이다. 단순히 저렴하기만 한 제품으로 내놓고 싶진 않았다. 그 탓에 기존 저가형 베이직 라인, 아이템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편이긴 하다. 천연소재 사용이나 오랜 개발 기간을 거치는 슬로우 베이직. 특히, 옷장 속 꼭 필요한 10가지를 셀렉트한 아이템라인이다. (대체로 10만원 전 후반 가격대이다) 주로 계절을 타지 않거나 간절기용 의상으로만 갖춰졌다. 그 때문에 정말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저지 소재이지만 동시에 포멀함을 드러내는 디테일과 마감, 제봉 기법 등을 이용했다. 기본에 도전하는 것이 디자이너에게 있어 가장 큰 도전이라 생각한다. 일단 올해는 매스화 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개인적으로, 우선 내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언가 또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봉사활동 (그는 이 단어를 못내 쑥쓰러워 했다) 혹은 그걸 닮은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테고. 무어든 내게 삶의 충만함을 줄 수 있는 것을 찾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브랜드가 도시의 옷을 풀어내는 건 아니니까. 당신과 다른 이들이 느꼈던 그 바람은 그렇게 우리 옷에 날로 여물어갈 거라 생각한다. 내 삶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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