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인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녔는데 아파트 뒤 크고 경사진 주차공터 오르막길에서부터 꼭 친구 하나씩을 태우고 아래로 내달렸다. 브레이크역할을 해줄 게 딱히 있나. 값 비싼 나이키 고무밑창이 아스팔트를 쓸어내면서 속도를 줄이는 수 밖에. 그렇게 새 신발을 한 달도 채 안 되어 바닥구멍을 내곤 새 신발을 사러 어머니와 함께 외출을 해야만 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늘 내게 나이키 운동화를 신겼다.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한 번 백화점이나 나이키 상설매장에 들릴 적마다 나이키 로고 달린 티셔츠니 바지니 일단 사서 나오곤 했다. 어머니는 늘 내 옷을 자주 사다 입혔지만 그 중엔 유독 나이키 관련 용품이 많았다. 어머니 어린 시절 가난에 어려웠던 점을 지금 떠올려보면 몇몇의 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나이키가 부의 상징처럼 여기어 졌던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그때 어머니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그 값에 치른 나이키 운동화가 보드를 타기 위해 희생당해야 했던 꼴이 마음에 내키지 않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늘 깨끗한 상태로 당신께서 손질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열 켤레 가량 새것이나 다름 없는 운동화를 고무 밑창만 닳아 버려야 했다. 몇 차례 핀잔도 들어야 했고 한 동안은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못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렸다. 사실 내겐 그 과정은 하늘을 날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마치 비행조종사가 비행 전 가상훈련을 하듯이 말이다.
부산에서 가장 높은 지형에 지어진 현대 3차 아파트는 아래로 절벽 마냥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에 강철 요새처럼 매서운 바람을 버티며 서 있었고 해질 녘 무렵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붉게 물드는 부산 도시 전경 위로 그리스 신화 속 구름들이 다시금 누군가의 전설을 빛내기 위해 우람한 풍채를 흔들었다.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재로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두 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그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이 밀리는 걸 느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쳤다. 어쩌면, 그 어느 때 한 번은 하늘을 날았을지도 모른다. 등 뒤에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nike)이 작고 여린 두 발을 허공 위로 올려 주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 어머니가 내게 신겨 준 나이키가 어쩌면 당신의 지난 유년기를 회복하기 위한 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묵묵히 다시 새 나이키를 신겨 주었던 건 어쩌면 끊임 없는 실패에도 승리를 되찾으란 의미가 아닌가 씁쓸한 상상을 더해본다.
- 1884년부터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BC2세기 경의 Nike 상.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생존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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