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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20th Century Fogotten Boy Band 이학림 디자이너 인터뷰

20th Century Fogotten Boy Band 이학림 디자이너 인터뷰

 

20th Century Fogotten Boy Band 를 런칭 후 곧장 서울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 프레젠테이션을 이끌어 낸 이학림 디자이너는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다. 인터뷰를 앞두기 전 한 식당에서 지인들과 밥을 먹고 있는데 이제는 K-패션이라는 타이틀로 방송된 시사2580(2013 2 3, 842)에서 그가 출연해 한국 편집매장과 디자이너 브랜드 사이의 위탁판매 문제점 등을 꼬집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 또 동시에 늘 패션현장에 있어 타자이자 소신 있는 독설가, 이학림 디자이너. 디매거진은 인터뷰를 통해 그가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과정들 그리고 국내 소규모패션 디자이너들과 편집매장 사이의 판매 시스템에 대한 의견과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아볼 수 있었다.

 

(이학림 디자이너 분이) 나이가 조금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동안이다.

 

이젠 많이 죽었다. 2, 3년 전만 해도 볼만했다. (웃음)

 

2011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3(이하 프런코3)의 공식 카페에 이학림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직접 댓글을 달아놓은 것도 보았다. 누구는 성지 순례라며 답글을 달고 가는 이들이 많더라.

 

일이 없으니까 그랬던 거다.

 

방송 나갈 당시 심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출연했다고 들었다.

 

당시엔 나가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갓 한국으로 돌아온 시기였다. 당시 만남을 가지던 친구가 방송에 출연해보길 권했고 한창 거절하던 차에 7 28일 즈음인가, 마감 직전 신청했다. 당시 취직도 되질 않고 돈도 모이질 않던 때였기에 이것도 으레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덜컥 뽑힌 거였다. 무얼 해야 할 지 분명하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한창 지쳐 있던 때였다. 평소에도 말을 가리지 않고 하는 편이지만 그때엔 방송이라는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강하게 얘길 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괜히 건드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그 방송 덕택에 악동이라던가 독설가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첫 회 탈락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탈락 후 돌아가는 내 모습을 촬영하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나도 내 나름의 가락이 있는데 내가 먼저 떨어지니까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 방송이 끝난 뒤 프로그램 PD가 내게 와서 이런 얘길 하더라. 이런 서바이벌 방송이 끝나면 보통 두 명의 사람만 기억을 한다더라. 그래서 그게 누구냐 물었더니, 우승한 사람과 첫 회 탈락자는 시청자들이 무조건 기억을 한다더라. (웃음) 처음이니까 임팩트가 강한 탓이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면 계한희 디자이너(프런코1 첫 탈락자)의 경우도 그렇지 않은가.

 

만약 더 오래 출연을 했더라면 되려 나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당시 방송에 출연했던 디자이너들 중 일부는 프런코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데 반해 나는 잠시 출연했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프런코 올스타라는 프로그램이 준비되던 중 제작진으로부터 섭외 요청이 왔었다. 지난 출연진들이 모여 다시 경합을 벌이는 형식이더라. 결국 거절을 했다. 여성복 특히, 드레스 등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이나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니고 또 자신도 없었으니까. 이런 생각은 해봤다. 다시 출연해서 첫 탈락자가 되어 볼까, 프런코 사상 두 번이나 첫 회 탈락을 하면 크게 선전이 될 것 같더라. 하지만 현재 경력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방송이 끝난 뒤엔 무얼 했는가.

 

출연 이후 한 달 가량 쉬다가 다음 해 2월경 회사를 다녔다. 사실 그 해 한국에 돌아온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을 때였으니까. 먼저 욕심을 내기론 개인브랜드를 준비하는 거였다. 하지만 돈이 없었으니까.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

 

무역회사 쪽에서 연락이 왔다. 직책이 과장 급이었다. 패션 관련 무역회사였는데 GAP과 같은 어패럴 브랜드를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 개발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 또는 재화를 제공하는 생산방식 , 두산백과 참조) 하는 그런 업태였다. 연봉도 상당히 좋았는데, 면접을 보았고 확실하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 취직이 결정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이 너무 편해 보였고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과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공장과 같은 힘든 곳을 찾았고 그러다 결국 프로모션 회사에 들어갔다. 직접 발로 뛰었고 내가 할 일들에 대해 현장경험을 쌓고 싶었다. 굉장히 힘들더라. 주변 사람들도 말렸다. 6개월 정도 일을 했고 그 사이 창작스튜디오 쪽에 신청하여 입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창작스튜디오를 입주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거였는데, 서울시 주최 하에 신인디자이너경영대회라는 명목으로 계획된 프로그램이 초창기의 프런코였다. 그래서 창작스튜디오 입주신청 시 가산점이 주어지게 되었다. (프런코4 출신부터는 가산점 제도가 없어졌다) 다른 얘기지만, 서울패션센터가 없어지게 되면서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지원금도 끊겼다. 나 같은 경우는 그 과정 중간에 있었던 탓에 지원금의 절반만 받았다.

 

이학림 디자이너가 보기에 현재 창작스튜디오의 역할이 어떻게 보이는가.

 

오세훈 시장이 물러나고, 서울패션센터가 없어진 뒤에도 창작스튜디오의 역할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 달라진 점은, 경력이 채 되지 않는 신인디자이너까지 지원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지난 입주 신청 시기부터는 어느 정도 실적이 있어 걸음마를 뗀 사람들을 많이 뽑기 시작하더라. 그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막 시작했을 당시가 가장 어렵지 않은가? 공간도 없고 정보도 없을 때가 가장 힘드니까 말이다. 나도 그렇게 시작을 했고 말이다. 그걸 거쳐 목표에 도달하기까진 많은 어려움이 닥친다.

 

아까 패션스튜디오 실내를 둘러보니 빈 방이 많더라.

 

대 여섯 개 가량 빈 공간이 있다. 어떤 디자이너는 같은 시기에 입주를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방엔 늘 불이 꺼져 있고 간혹 직원들이 와서 창고 용도로만 사용한다. 내 입장에선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당시 주변에 실력 좋은 이들도 떨어졌다. 간절하게 지원이 필요했던 이들이 원했던 공간인데 그렇게 방치되어 온 건 분명 불편하다.

 

분명 공간만이라도 필요로 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평가기관에서는 실적만 가지고 평가하니까 무어라 따지긴 힘들다.

 

어떤 유사 기관에서 진행하는 곳은 입출 카드나 지문인식으로 시간을 체크하기도 하던데.

 

이 곳도 그렇다. 하지만 이 공간에 일정 시간 있는 것이 의무화 될 경우 생기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가령 출장이나 기획 등의 이유로 외부에서 활동해야 할 일이 많을 경우엔 어찌할 건가.

정확한 잣대를 두고 보기보단 알아서 해야 할 문제다.

 

공간 말고도 분명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할 때 좋은 이점이 있을 듯하다.

 

특정 정보를 얻거나 매스미디어 등과의 연결 또는 특정 기관에서 진행하는 자체적인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 때문에 다음 입주 신청 시기부터는 온라인 네트워크 등을 통해 정보들만 습득하고 교류하길 바라는 이들을 따로 신청 받을 계획이라고 하더라.

나 같은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다큐 3일이나 짝 같은 프로에서 섭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거다. (웃음)

 

얼마 전 시사2580에 출연하는 걸 보았다.

하고 싶은 얘기는 눈치 안보고 해버리는 편이라 하고 싶은 얘기를 잔뜩 꺼냈었는데, 제작진에서 너무 비난하듯이 이야기 하면 나중에 이쪽에서 활동하는데 지장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돌려서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오히려 다시 찍는 게 낫다고 하셔서 촬영을 두 번 했다. 그리고 실제로 방송에 나온 부분은 가장 순하게 이야기 했던 부분이고, 사실 한풀이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놨던 것 같다.

 

방송 자체가 한국 패션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소비자들의 변화 이런 것들을 다뤘는데 그와 함께 가로수길 중심에 선 국내 SPA 브랜드들을 함께 소개하더라.

 

패션기업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말했는데 모두 제외했다. 제작진 측에서 말렸다. 사실 내가 말했던 이야기들은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힘 없는 신인들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얘기할 법한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들이 많았는데, 편집 과정에서 말한 내용의 1/10도 나가지 않아 속상했다.

 

(이학림 디자이너 분이) 시사2580에서 편집매장과 디자이너브랜드 간 위탁판매에 의존하는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말했는데, 많은 디자이너들이 (방송을 보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낼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요즘 새로 드는 생각이 있다. (위탁판매 시스템이) 일종의 B2C 방식인데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수수료만큼만 덜고 가져가는 것이다. 굉장히 심플하다. 수출에 대한 문제로 가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관세 그리고 수많은 절차와 과정 속에서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 : 배급업자)에게 제공해야 할 지불액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넘겨야 할 도매가를 맞추기 위해 마진율을 줄일 수 밖에 없다. 그걸 줄이면 다시 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게 온전히 나쁘다기보단 절반씩 시스템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로 고가의 상품은 국내 바이어 또한 구매를 하고 저가의 상품은 위탁으로 가져가는 형태이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수익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도 있을 거라 본다.

 

쉽게 말하면, 현재 당연한 듯 진행되고 있는 consignment(위탁판매), 적어도 내가 알기론 한국에서만 있거나 지극히 적은 수의 나라에서만 진행되는, 무조건적으로 납품을 하는 쪽에 불리한 조건이다. 물론 꼭 나쁘다고만 얘기할 수는 없다. 길게 얘기해야 할 부분이지만 가격경쟁력이라는 면에서 에이젼시, 브로커 등 수출 시에 거쳐야 하는 두 세 단계를 건너 뛰는 동안 열 배 혹은 몇 십 배의 중간 마진이 붙게 된다. 결국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제품들은 어딘가에서 소비자에게 팔리기 위해 거치는 과정에서 나한테는 결국 오지도 않을 이상한 가격이 붙게 되는 것이다. 반면 B2C방식인 위탁판매는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내가 팔고 싶은 가격을 직접 조정할 수가 있으니, 몇몇 경우에 한해서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걸 수출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어쨌든 고정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홀세일 방식이 대부분의 경우 디자이너에게는 유리한데, 소비자 대부분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모를 테니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아마 좀 신기해하지 않았을까? 쉽게 말하면 5만원짜리 옷이 100개가 팔렸는데 정작 디자인하고 옷 만든 놈은 원가 빼고 수수료 빼고 남은 재고 계산 하면 결국 버는 돈은 몇 십 만원도 안 되는 그런 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정리해서 보다 많은 편집매장 오너들과 디자이너들이 조율을 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매체에서도 이에 대한 얘길 많이 한다면 보다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을 듯하다.

 

만약 디자이너가 자신의 유통채널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중간 마진이 빠지니까 보다 저렴하게 사람들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격을 다시 맞춰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 SPA 브랜드가 하는 유통방식이다. 그게 세밀화 되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내수를 할 때 굳이 편집매장을 거치지 않고도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가져서 사람들이 제품을 많이 보고 구매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얘길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웹사이트에서 국내 브랜드들이 전부 모여 수수료 없이 직접 주문을 받고 배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 판매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구매가 가능하고 바잉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나의 빈 공간처럼 디자이너들이 활용하는 거다. 수익모델은 광고나 기획, 별도의 바잉이 진행될 때 패션에이전시 역할을 함으로 비용을 받고 말이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있긴 하더라. 대부분 온라인을 통한 방식이긴 한데, 최소 수량을 정해놓고 B2B B2C 방식을 선택하는 것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바쁘다 보니 이런 환경이나 공간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몇몇 성공한 케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엔 또 문제는, 그런 시범 케이스가 등장하니 너도나도 그런 똑같은 채널을 만들어서 결국은 서로 특징도 없고 딱히 클릭해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달까. 가장 이상적인 건 편집매장마다 크건 작건 문화적인 컨텐츠를 보유하고,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컨텐츠 개발에 서로 노력하는 형태랄까? 단순히 옷을 사는 공간이 아닌 보다 즐길 거리가 있는 채널이 있다면 서로에게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학림 디자이너는 SNS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방송이나 SNS 등에 입장이나 의견을 많이 밝히는 것 또한 나에게는 일종의 실험이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패션계는 의외로 매우 폐쇄적이다. 내 노하우를 공개하려 하지도 않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것이 오히려 신비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시대는 갔다고 생각하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도 나에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시스템에서 맘에 안 드는 것은, 패션은 지금까지 늘 일방향적이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옷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옷을 소비자가 구매하는 패턴. 하지만 지금은, 또 미래에는 쌍방향적인 것이 당연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세뇌 당하듯 그저 디자이너들이 발표하는 것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종적으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내 몫이 되겠지만, 그들의 의견, 그들의 취향,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내가 숙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읽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SNS 중독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SNS활동은 내가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더러,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디자인들에 매우 큰 도움을 주는 엄연한 리서치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패션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일상생활을 이야기 하기도 하며, 패션은 아니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문화에 대해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 SNS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공짜이지않나. 관음증이 좀 있어서 나는 그들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SNS는 매우 나와 잘 어울리는 매체이다.

 

지난 해에 서울패션위크에서 컬렉션쇼를 했다. 비교적 다른 이들에 비해 빠르게 시작하지 않았나.

 

데뷔를 빨리 할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현장으로 나오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유독 지난 몇 년 간 많은 사람들이 패션디자이너로 달려 들었다.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느껴진다. 에이랜드만 가도 늘 새로운 브랜드가 생겨나지만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의 옷들이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특이한 거 만들어서 걸어봐야 안 팔리니까. 그리고 그 안팔린 옷에 대한 부담은 100% 디자이너의 몫이 되버리니까. 제레미 스캇과 같은 디자이너의 제품들을 보면 누구나 생각해 봤을 법한 걸 실제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이것이 이슈화 되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본과 마케팅이 뒤에서 받쳐줘야 하고, 그런 상황 하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거다. 만약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디자이너가 날개 달린 옷을 만들면 누가 선뜻 사려 하겠는가. 이렇게 국내에선 서로 비슷한 상황에 얽힌 이들끼리 서로 죽어라 치고 받고 싸우는 꼴이다. 그 많은 옷 중에서 내 옷이 이학림 옷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기 위해선 많이 노출이 되고 알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거에 걸린 수많은 옷 중에 어떤 옷은 , 이건 내가 방송에서 본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보다 노출이 될 필요성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선 안되겠다 생각했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던 중,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직 옷을 생산하는 주기를 많이 겪은 것이 아니다. 아직 배워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패션위크에 도전하기로 결정을 내릴 당시에 주변에서 꼭 쇼를 해야겠느냐고 엄청나게 뜯어 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히 내가 런웨이를 갖기에는 자본도 실력도 역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사실 준비한 건 한 달도 안 되었다. 디자인과 패턴을 준비한 과정을 포함하면 두어 달 정도 들었지만.)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기에 부담도 컸고 걱정도 많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하다 보니 어찌어찌 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참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컬렉션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단체와 소셜 펀딩(Social Funding)을 준비하지 않았나.

 

했었다. 나중엔 그 곳과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 몫 돈을 받아 후원을 받는다. 시작할 때엔 굉장히 좋게 생각했다. 나중에 후원 받은 총액과 후원자 목록을 받게 되었는데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친구 또는 가족들이었다. 10%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이래저래 빠지면 20% 정도 빠져 나갔다. 그렇게 이 백 만원이 채 안 되는 가량의 돈을 받았다.

당시 예정했던 룩북 제작만 100만원 정도 견적이 발생했다. 사진 촬영에 친구 도움으로 매우 저렴한 비용을 통해 모델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촬영 자체만으로도 이미 후원금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때 가니까, 엉뚱하게 친구들 돈 받아 수수료 빠질 거면 차라리 직접 빌리는 편이 나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다시는 시작하는 사람들끼리 의욕만 앞서서 뛰어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100+1 150이 될 수 있지만 1+1=0 혹은 -100이 될 수 있는 것이 패션계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그 소셜 펀딩이라는 것이 뭔지, 그들이 뭘 원하는 건지, 나는 이 기회가 꼭 필요했던 것인지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시기에 무작정 뛰어들었고, 결과는 서로에게 참담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운데 끼어있던 누군가만 돈을 번 셈이 되었다.

 

다시 컬렉션 얘기로 돌아가보자. 남성복으로 접근했는데 분명 여성 모델들도 등장을 했었다. 락밴드가 가지는 늬앙스도 풍겼다.

 

내 디자인들은 땀내나는 마초맨 느낌은 분명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분명 구별되지 않는 양면적인 느낌을 나 스스로 가지고 있고 그런 성격을 의상에 풀어내려고 애쓰는 편인데 다행히도 그렇게 실제로 보여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쿠투어(Couture) 드레스나 샤방샤방한 여자옷은 디자인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적에 한 경험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에게는 그런 "여성스러운" 면은 철저하게 결여되어있고,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된다. 그 대신 내가 만드는 여자옷에는 철저하게 내 코드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내 코드는 결코 땀내나거나 우악스럽지 않다. 그래서 그런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여자라면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일 예로, 나는 분명히 남성복 위주로 디자인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화보촬영이 되었던 모든 옷들은 여성잡지에 쓰였지 남성잡지에 쓰인 적이 없었다. 아주 최근에 드디어 처음으로 남성잡지 커버로 쓰이긴 했지만. 한마디로 분명히 남자옷이지만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코드가 있다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현상들이 마음에 쏙 드는 건 딱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나 자체가 그런 사람이니까. 팬 분들도 남자보다는 여자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번 컬렉션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이번 컬렉션은 지난 시즌보다 확실히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2배 이상 높아졌고, 경험으로 깨닫게 된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음악도 전보다 훨씬 먼저 선곡을 끝내고 곡들의 무드도 조정이 끝나있었고, 믹싱 작업도 도와줄 음악 하는 친구와 이미 이야기도 마쳐서 준비상태였고, 메이크업이나 기타 준비 과정이 전보다 훨씬 세련된 상태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번 서울 패션위크 최종심사에서 탈락 되버리는 바람에 런웨이는 갖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 있었는데 좀 안타깝기는 하지만,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좀 자만했던 부분도 있었을텐데 다시 한 번 적당한 시점에 겸손해 질 수 있었던 것 같고,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컬렉션 라인과는 별도로, 진행 중이던 두 번째 레이블에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외에 진행 중이던 몇 가지 일들에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3 11일부터 상하이에서 진행되는 트레이드쇼에 참가하기로 해서 방금 준비가 대충 끝났다. 만약 이번에 쇼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지난 번 처럼 성사시키려고 발버둥 쳤었겠지만, 사실 이제서야 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정말 금전적으로나 뭘로 보나 이번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아마 이번이 진짜 마지막으로 올인하게 될 수도,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엔 손을 놔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각오 하고 도전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못한 쇼는 반년동안 수출 경험도 해보고, 또 미진했던 지난 시즌의 완성도도 더 올려서, 비록 아쉬운 반년이지만 그 이후에 다시 도전해 볼 것 같다. 이번 패션위크에는 잠잠히 그들의 쇼를 지켜보겠지만 반년 후에는 꼭 다시 무대에 서서 나는 떨어질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 해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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