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kashic Record

UNDRESS U Take 2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1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이석우, 송봉규 디자이너의 디자인오피스 SWBK 그리고 모션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피규어 페스티벌 기획 등 각기 다른 분야의 다섯 멤버가 모인 컬렉티브 아티스트 그룹 STICKY MONSTER LAB. 이들이 모여 2011년 8월 5일, 서울 종로구의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SWBK와 STICKY MONSTER LAB.의 협업 전시 SXS 전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순수예술로서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그들의 의도를 듣고, 나는 정말 그들이 상업디자인에서 순수예술로의 경계를 뛰어 넘었기를 바랬다. 그들은 그들의 애티튜드에 대해 스스로 ‘애매함’에 있다고 말한다. 상업디자인과 순수예술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에서의 지속적인 작업은 현대미술(contemporary art)로서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권위주의나 엄숙주의에 취한 현 미술계의 무게를 가볍게 덜어내는 작업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혹은, 미술시장에 대한 또 다른 대안(alternative)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SXS 전을 통해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한 메타포(metaphor)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모든 예술은 삶의 실재에 대해 사유와 해체, 분석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 수용자를 통해 감상되는 것이다. 때문에 삶을 뛰어넘지 못하면 이것은 유희에 불과하다. 즉,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이번 전시에 작품으로 삼은 오브제들을 통해 보다 뚜렷하게 읽혀질 수 있는 의미와 은유를 발견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독자는 필자의 글을 읽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냥 감각적이고, 예쁘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의미를 찾아야 하나?’ 음,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렇다’이다.
 정확히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맞겠다. 다들 알다시피 장기나 체스 같은 게임 뿐 아니라 모든 컴퓨터 게임들도 마찬가지인데 게임은 일종의 규칙이다. 규칙을 알지 못하면 게임은 시작되지 못한다. 그림은 그 점에서 볼 때, 하나의 추리게임과 비슷하겠다. 위에서 언급한 실재에 대한 메타포를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읽고 찾아내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읽어내는 것이다.
 또, 창작자가 작품을 만드는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이것은 예술 행위에 대한 목적, 그러니까 예술 활동이 궁극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필자는 현 예술이란 결국 삶의 범주 내에서 이러한 인식을 표현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판단한다. 스틱키몬스터가 인간이 아니지만 결국 미키마우스나 심슨 가족(뾰족한 머리와 노란 피부 그리고 손가락 네 개가 상식적으로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들 또한 우화 속의 인간을 대변하는 캐릭터이고, SWBK의 가구는 인간이 사용하는 실재적 도구이다. 결국 이들은 필연적으로 삶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순수예술의 경계로 접근하고자 이들이 SXS 전을 기획했음을 고백했다면 그러한 접근에 대한 노력의 흔적이 보였어야만 했다.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이 의미가 없고 이미지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대중이 많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키치적이고 가볍다고 해서 결코 의미나 상징이 상실되고 형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컨템포러리 아트의 거장들- 예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은 듯하지만 색채와 최소한의 구성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던지고,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마치 낙서를 한 듯한 회화 속에는 굉장히 기호학적이고 구조적인 접근방식이 숨어 있다.

  이번 SXS 전이 그 목적과 의도만 남은 채 정말 ‘애매함’만 갤러리에 머문 것 같아 아쉽다. 한국의 갤러리, 미술관에서의 엄숙주의를 허물었는지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DMAG에 싣지 않은 다른 엉뚱한 이야기
  이번 SXS 전을 통해 그들이 창출한 작품들은 사실상 작품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공간적 아우라에 의해 작품으로 인식된다. 사실 이것은 비단 SXS 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작품 모두에 통용된다. 만약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미술관이 아닌 가정집 거실 벽면에 걸리게 되면 순수예술(fine-art)에서 장식예술(decorative-art)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뱅크시는 이러한 미술관에서의 엄숙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유명 미술관, 갤러리 등에 몰래 전시를 하기도 했다.



Columnist PAK SUN WOO / @SUPER_EDITOR
Copyright (c) 2011 DMAGAZINE All Rights Reserved.


"조금, 뭐랄까. 부끄럽다, 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읽고 또, 정리해야겠지. 공격하는 글을 쓰자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