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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YOKOE 2009-10 AW / "한 때 내 시선을 앗았던"

 

YOKOE 2009-10 AW / "한 때 내 시선을 앗았던"
(2013 1 28일 작성)

 

지난 주 나는 다시 취직 아닌 취직을 하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패션문화 매거진을 다루는 회사에 다시 불려 갔다. 익숙한 일이 되었지만 다시 인터뷰나 취재, 기사를 쓰려니 반 년 가까이 쉬어 조금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하물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여전히 쉽지가 않다. 그만큼 나태해졌나!)
  
누구와 올 해 첫 인터뷰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마침 부산에서 활동하는 CONTRA B 디자이너 정연제가 서울에 출장차 올라와 냉큼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무래도 편한 상대가 좋겠다 싶었다. 헌데 막상 서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보니 아차 싶었다. , 되려 민망한 거다. 그래도 십 여 분 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친구가 아닌 인터뷰이(interviewee)를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정연제는 벌써 몇 년 째 동료이자 친구이다. 헌데 인터뷰라는 특성 자체가 상대에 대해 다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되려 가까울수록 놓칠 수 있는 것. 다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모르는 것. 그런 것들 말이다.
   
연신 contra B의 정연제와 대화를 열어가는 동안 오마쥬처럼 중첩되는 이가 있었다. 닮아도 이리 닮을까 싶은. 그는 다름 아닌 YOKOE의 디자이너 김선욱이었다. 옷의 무드나 스타일에 관한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두 사람이 옷에 대해 바라보는 지점이나 시선 그리고 그 근원적인 모티브가 닮았는데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근원적인 폭력성이랄까 특히, 그런 것들이 닮아 소름이 끼쳤다.

재작년 가을 끝머리에 그와 인터뷰를 했다.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불편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자신의 공방을 찾는데 애를 먹어 포토그래퍼와 나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작업실을 찾았는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연신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않던 그가 처음엔 순전히 늦은 이유 탓인 줄로 알았는데 한참 대화를 나눠보니 그 때문이 아니었다. 늘 가지고 있는 어떤 폭력성이 숨어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통제가 안 되는 호랑이 앞에 간신히 앉은 꼴이었다. 인터뷰 당시 그는 곧 YOKOE브랜드 활동을 접고 가죽을 소재로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을 해나갈 거라 말했다. 역시, 몇 달 후 그는 자신의 오피셜 사이트마저 접고 브랜드를 온전히 마무리 지었다. 단 한 차례의 딤 레더:DIM LEATHER(가죽소재의 다양한 의상, 악세서리 라인) 라인업 이후 적잖은 마니아들의 기대를 버리고 종적을 감춘 것이다.

처음 그의 컬렉션을 본 것이 2009년 가을 무렵이었다. 한국에서 고딕이나 아방가르드 디자인 혹은 그와 닮은 다채로운 디자인을 접한 경험이 없던 내겐 신세계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톤앤톤의 방식, 그러니까 동일한 색상에 다양한 소재를 혼합하여 페브릭 믹싱을 해내었다거나 하나의 옷을 다양한 느낌으로 살려 착장할 수 있는 흥미로운 패턴구조에도 불구하고 웨어러블한 무드를 만들어 낸 것 또한 훌륭했다. 남성복을 지향했지만 여성에게도 어울렸다. 이후 딤레더 라인에서 보다 과감하게 나아갔지만 그 특유의 매력은 잃지 않았다. 그렇게 패션의 새로운 무드로 내 시선을 앗은 건 YOKOE 2009-10 AW 컬렉션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매력적이다.

정연제의 contra B 또한 벌써 네 차례의 시즌을 펴냈지만 이제 시작이다. 어찌 되었건 각자 다른 사람이지만, contra B의 새로운 길은 보다 묵직하고 오래 사랑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