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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CONTRA B Designer 정연제 인터뷰

2013 1 23일 인터뷰 / CONTRA B 디자이너 정연제

지난 2 년간 한국에선 수많은 소규모 신인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 걸고 브랜드를 런칭 해왔다. 그 틈새에선 부산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들 또한 대거 등장했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신인이 있었다. 정연제 디자이너가 전개하는 contra B는 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의 의상들은 몇 년 사이 국내 고딕과 아방가르드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통해 적잖은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조용히 4 차례의 컬렉션을 치뤄오던 그가 지난 2012년 가을, 부산 프레타 포르테의 첫 단독 컬렉션쇼를 통해 정연제 디자이너의 이름이 보다 큰 물결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올해로 근 3년 가까이 옷을 만들고 있다. 콘트라 비도 시작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콘트라 비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졸업을 앞둔 학생 시절, 나와 같은 몇몇의 디자인과 학생들이 모여 각자의 옷을 만들어 다양한 기획을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서 과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모여 좀 더 재미있게 옷을 만들어 보자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 모임에 이름조차 없었다. 그게 결국 [패셔니스타], [B salon] 그리고 [129 35 아틀리에]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열 댓 명 가량의 부산 친구들이 이 후 각자 브랜드를 런칭하여 사업자 등록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 그 모임에 참여한 이들이 80 여 명 가량 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80 명까지는 아니고 4, 50 여 명 정도 되었을 것이다. 옷만 만드는 이 뿐 아니라 기획이나 MD 등이 다 합쳐서 그 정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포지션들은 그다지 빛을 보진 못해 대부분 하차했다.

 

본래 그 모임이 한 달에 한 벌 가량의 옷을 만들어 카페나 문화공간 등에 전시와 쇼를 하고 판매를 하는 거였다. 그 당시에 옷이 팔렸던가.

 

부산 해운대 클럽 엘룬에서 쇼를 했던 당시, 구제샵을 하는 사장이 내가 만든 옷을 구매했다. 당시엔 판매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했다.

 

콘트라비에 대한 성격은 그때와 현재를 비교할 때 변화한 부분이 있는가.

 

아웃사이더, 비주류에 대한 것을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달라진 점은 없다.

 

옷들이 대체로 그로테스크(기괴)한 성격이 많았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의상들을 묶어놓고 스타일링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게 크다.

 

 

 

 

 

 

 

이번 프레타 포르테 부산 2013 AW 때 의상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예전에 비해 세련미가 생긴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여러 부분에서 발전을 했을 것이다. 패턴에 대해서도 그렇고. 예로 올해 시즌에선 어깨선을 일자형이 아닌 아래로 처지는 타원형으로 짜는 등 눈에 잘 띄진 않는 부분도 신경 쓰려 했다. 초기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옷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옷을 만들 때 생각을 조금 많이 하게 되었다.

 

무엇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건가.

 

지금은 옷을 입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는 거다. 비교적 신중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 지난 때에는 여성복 같은 남성복을 많이 전개했다면 지금은 보다 더 남성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

 

늘 의상들에 색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취향의 문제인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색을 쓰면 옷이 가벼워 보이거나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다른 잡지 인터뷰에선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모든 생명이나 사물은 태워지면 검은 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보다 사실 무채색이 아닌 삼원색과 같은 색상들에 대해 내가 흥미를 잘 느끼질 못하는 이유가 클 것이다. 내가 다양한 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고.

 

지난 봄, 여름 컬렉션에선 붉은 색을 쓰기도 했는데 강렬하지 않았나.

 

그 때엔 쇼가 지루할 것 같아서 썼다.(웃음)

 

콘트라비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들로부터 들었는데 가죽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 아쉽다고 하더라. 이유가 있는가.

 

나도 자주 사용하고 싶다. 하지만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죽이 유럽 등에 비해 질이 많이 떨어지더라. 금액 자체가 차이가 크진 않다. 유럽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말이다. 리터치의 차이도 크고 말이다. 굳이 그런 원단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같은 원단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한 착장에서 몇몇의 컬러 감도가 다른 원단을 사용하는 등의 신경을 썼다. 지루하지 않게끔.

 

콘트라 비의 뜻이 뭔가.

 

콘트라(contra)는 반정부 세력 또는 반대 의견 등을 의미하는 용어이고, B B급을 상징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B급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쿠엔틴 티란티노의 영화들처럼 말인가.

 

그렇다. 모든 A급보다 B급이 더 훌륭할 때가 있다. 게릴라, 혁명군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실현되었을 때 그건 더 이상 혁명군이 아니다. 무언가를 관철시키고 변화하려 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당신은 부산에서 계속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진 않은가.

 

부산에서 디자인을 한다고 해서 뒤쳐지거나 하는 점은 없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쇼룸도 내고 고객들과 소통도 많이 하고 매스미디어나 편집매장 등에 대해서 신경을 보다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이다.

 

어릴 적에도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나.

 

중학 시절 내 꿈은 술집 사장이었고 고등 시절엔 카페 사장이었다. 그때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지금과는 너무 반대이지 않은가.

 

, 그런가?(웃음) 고등학교 진학 때에도 인문 계열이 아닌 실업 계열로 가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애들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고. 인문 계열로 가면 반대로 평생 공부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인문 고등학교로 갔다. 그나마도 남녀 공학인 학교만 골라 원서에 썼다. 하지만 남고로 진학했다. 그것도 이과 계열로 말이다.

 

 

 

 

본래 디자인과 학생 이전에 공대생이었다고 들었다.

 

공대로 진학하게 된 계기도 단순했다. 웃어른들이 남자라면 공대를 가라는 한마디에 별 고민 없이 공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공부는 어렵고 나완 너무 성격이 맞질 않더라.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했다. 그 사이 남동생이 대학 진학을 했는데 나와 비슷한 학과에 진학을 했다. 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 거였다. 나와 차이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 학업과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옷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평소 옷을 좋아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본래 결혼하시기 전 서울에서 옷을 디자인하셨던 분이셨는데 중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준 옷을 자주 입었다. 부산 진시장을 따라 원단을 보는 일도 익숙했다.

 

, 고등학생 때에도 손수 만들어 주셨나.

 

아니, 그때엔 내가 입고 싶은 걸 입고 싶었다.(웃음)

 

그럼 어머니와 상의 후 패션디자인 학과로 다시 옮긴 건가.

 

아니다. 먼저 학교에서 절차를 밟아 전과를 마친 후에야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늘 그랬다. 어차피 할 거라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다. 그럼 빼도 박도 못하니까. 해병대도 그렇게 갔다.

2학년생으로 수업을 듣는 거라 처음에는 아는 게 많이 없었다. 처음엔 재봉틀에 실을 꿰는 것도 몰랐다. 그래도 늘 즐겼다. 나한테는 공대 수업보다 쉽게 느껴졌으니까. 여기엔 화학이나 물리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도 꼬박꼬박 챙겨 받았다. 재미 있었다. , 패디과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여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웃음) 아니, 그땐 정말 여자가 좋았으니까.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닌가.

 

지금은 다르다. 뭐든 좋아하는 게 생기면 끝까지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취미나 관심사도 늘 그렇게 마지막까지 가보고 나면 시들해진다. 그럼 다시 다른 걸 찾는다.

 

주로 혼자서 하는 취미생활일 것 같은데.

 

대부분 혼자 즐기는 취미생활이다. 공동체 생활을 즐기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싫다. 물론 어울릴 때엔 어울린다. 못한다기보다는 귀찮은 것에 가깝다. 유독 군대 다녀 온 뒤에 귀찮아진 것들이 많다. 부러 거리를 두게 되고 어두워지게 되는 기분이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땐 그러지 않는다. 얘기도 더 많이 하고 바보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 고등 학생 시절에도 그랬나.

 

그때엔 애들을 너무 많이 괴롭혔다. 그땐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 주고 그런 게 좋았다. 그땐 아이들이 나를 우러러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땐 그런 파괴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이젠 그런 기질이 다 사라져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말이다.

 

그랬던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기질이 밑바닥 속에 가라 앉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디자인으로 해소하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만약에 당신이 옷을 안 만들었으면 뭘 했을까.

 

요리사를 했지 않았을까.(웃음)

 

콘트라 비에 대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업데이트가 느리다는 점이다. 컬렉션이 끝나고 두 달 가량이 지나서야 블로그를 통해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나.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

 

올해에도 그런 자료들을 일찍 보긴 힘든 걸까.

 

아니다. 올 해엔 여러모로 신경을 쓰려고 한다. 아무래도 서울에 입고된 편집매장도 없다 보니 고객들이 직접 보거나 만지고 입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그렇긴 하다. 서울에는 콘트라비 제품을 보기 힘들다.

 

올해에는 가능하면 한 두 명이라도 서울에 가끔 올라올 때에 고객들과 자주 접할 기회를 가져 보려고 한다. 그리고 기존 제품 가격대보다 저렴한 소품이나 의상을 제작하는 한정판 라인도 진행하고자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연제 디자이너에게 있어 인생의 목표가 있는가.

 

거대한 목표는 없다. 결혼을 하고 자식이 태어나 학교에서 부모의 직업란을 채울 때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부끄럽지 않은,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 가족에게 인정 받는다면 밖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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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 www.d-magazine.co.kr

Designer Official Site : www.contra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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