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인피니티(PI INFINITY)가 지난 12월 12일부터 5일 간 열렸던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 행사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 분야의 새로운 활력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한 해 동안에 열리는 많은 디자인 관련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행사에선 흥미롭게도 양말 디자인 브랜드만 무려 세 곳이나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당신은 양말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지 않은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양말이라는 건 디자인과는 먼 거리의 것으로 여겨졌다. 양말은 참 오랜 시간 홀대를 받았다. 길게 흘러내리는 바지 속에 숨거나 여름 철엔 반바지 아래 운동화 속으로 꾸깃꾸깃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달아나야 했다. 그저 머리 한 켠 구멍만 나질 않는다면 북적거리는 번화가 한 켠에 자리 잡은 트럭이나 가판대 위에 올라와 천 원, 이 천 원에 집어가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2, 3 년 전 즈음부터 양말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소규모 디자이너브랜드가 하나 둘 탄생하기 시작했다. 에이랜드가 스웨덴의 해피삭스를 입고하기 시작하며 1, 20대 층에서 열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뒤 삭슈얼리 유어스, 얀웍스, I hate monday, Etzel, 삭스타즈 등이 생겨났다. 같은 양말임에도 각각의 디자인 성격 또한 브랜드마다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양말을 제작할 때엔 양말 기계가 실을 교차시키며 만들어내는 패턴에 한계가 있음에도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양말 그 자체로 승부수를 띄우던 양말 브랜드들 사이에 작년 겨울,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했는데 그게 바로 파이 인티니티(이하 파이)다. 파이는 그 태생부터가 흥미로운데, 수도권에 밀집한 다른 양말 브랜드완 달리 업체와 제조현장 모두 부산에 있는 지역 기반 브랜드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차이점은 바로 포장이다.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의 얼굴이 그려진 컵 속에 양말을 넣어 제공하는데, 이번 겨울 시즌엔 산타모자와 루돌프 뿔이 달린 홀더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달린 박스 등을 구매 갯수에 맞춰 함께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이번 겨울 시즌엔 양말에 담긴 동화 이야기를 크리에이터 그룹 WOOPRODUCT와의 협업을 통해 엽서로 만들어 함께 증정했다. 이는 더 이상 양말 본연의 기능이나 디자인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파이는 양말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소비자와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러한 파이의 노력은 이번 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소비자와 국내외 바이어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게 했다. 정작 파이 인피니티의 대표 조은영은 그저 아기들처럼 예쁜 양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쁘게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 뿐이어서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서 예뻐보였다.
오늘 우리도 옷장 서랍에 구겨져 있던 양말들의 표정을 살펴보자. 우리도 이제 양말과 대화를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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