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년 가을이 잦아들 무렵, 나는 다시 한 번 살아가는 데에 대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2 년 가까이 붙어있던 회사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떤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른 바,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거기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신규사업팀에 속했던 우리 부서는 본사로부터 경기악화로 인해 지원을 받지 못한 게 그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계간지(디매거진은 온라인잡지로 출발했다) 편집이 끝남에도 불구하고 끝내 책을 펴내지 못했고 이에 참여했던 프리랜서들에게 고료나 인건비를 지불하지 못했다. 월급은 꼬박 들어와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지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머리만 아파왔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퇴근 후면 틈이 나는대로 직장 동료나 평소 만남이 잦질 않던 패션디자이너나 에디터들과 만나 술을 진탕 마셨다. 2, 3년차를 넘어서기 시작한 그들 중 상당 수가 자신들의 현장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또, 일부는 소위 연예인병이라던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패션학과 학생도 몇몇 접하기도 했는데 자기 아는 사람이 누구 디자이너다, 에디터다 라며 인맥놀음을 할 때는 더 가관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불평불만에 입만 번지르르한 놈이었진 않았나. 아니, 그보다 난 왜 여기 있는 건가.
그렇게 술을 마신 다음 날 내 책상에 앉으면 별다른 대안 기획도, 기사도 써지질 않았다. 뛰쳐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뛰쳐, 나가고, 싶다.
그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부산 놈이 기대감에 상경하여 바라 본 패션현장은 생각보다 기대이하였다. 내가 패션 카테고리의 누군가라 소개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옷이라던가 악세서리, 소품들을 마주할 땐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기 시작했고 가급적 인터뷰를 해야할 때조차 달아나고 싶어 미루기 일쑤였다. 한 번씩 끄적인 기사들을 본 한 동생은 예전에 썼던 글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며 혹평했다. 결국 9 월 6일, 나는 회사를 빠져 나와 백수가 되었다. 스스로를 좀 추스리며 되겠거니 생각했다. 사실, 그 시점에 글을 버린 거였달까. 그 시점에 준비했던 크리에이터 크루 '우프덕트'(1월 말 즈음 웹사이트가 오픈된다)는 어쩌면 내가 패션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카테고리를 넓힌 공간일지도 모른다.
헌데 그랬던 내가 다시 잡지를 준비하려 한다. 무려, 두 개나 된다. 글을 멈춘 몇 달 사이 지난 내 활동에 애정을 보였던 몇몇의 선생님, 친구, 지인들로부터 독려를 받아 온 탓이 크겠다. 부산에서 나를 잘 이해하고 또 닮은 한 친구는 일을 벌이길 좋아하는 내 천성을 알아 걱정을 한다. 사실 나도 내가 걱정이 된다. 백수라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기획을 준비하는 동안 디자인이든 글이든 의뢰가 들어오는대로 했지만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긴 힘들 것 같다.
지난 몇몇의 변변치 못한 문장들을 나는 반성한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자료조사로 채운 글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패션이란 게 그렇다. 정보전달만으로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써야 할 글은, 패션 또는 그에 관련된 문화를 아우르는 수필이거나 혹은 그 범주에 속한 이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내가 올 해에 스스로 해내야 할 숙제는 이러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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