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은 궁금하지 않은가? 영국의 버버리(burberry)나 닥스(DAKS)의 메이커 등 각종 의류나 소품 등에서부터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입은 전사들의 킬트(kilt :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의 일종으로 주로 남성들이 착용한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격자무늬들을 보아왔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체크무늬, 타탄체크 등으로 부르는 이 타탄(tartan), 그 기원은 무엇이며 어디서 어떠한 이유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 우선 먼저 밝히자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고 복식사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에야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인터넷 포탈 사이트를 통해 타탄의 기원 또는 역사 따위를 검색하면 네이버 지식백과 혹은 블로그 등에서 간단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 대부분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타탄은 대부분 유럽 스코틀랜드의 씨족 가문을 상징하는 무늬이고, 13세기부터 심지어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일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타탄(tartan)에 대한 역사의 시작은 유럽 스코틀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 하일랜즈highlands 전통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이 격자무늬가 새겨진 타탄tartan 킬트는 착용자의 가문을 나타낸다고 말하는데, 사실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은 만들어진 전통이다.
이 능직으로 짜는 격자무늬 모직물의 기원을 쫓아보면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서 발굴된 기원전 1200~700년경으로 추정되는 2색 격자무늬 모직물과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던 실크로드에 잠들었던 미라들의 의복에서 일부 켈트 식 격자무늬로 배열된 모직물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민속복식연구 센터장 퍼트리샤 리프 애너월트(Patracia Rieff Anawalt)의 저서 The Worldwide History Dress에서 밝히는 논점에 따르면, 17세기 스코틀랜드 하일랜즈에서부터 시작된다.
애너월트의 글에 따르면, 그 당시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던 자연 염료를 사용해 다양한 격자무늬로 길게 직조한 원단을 사용하여 킬트를 제작하였다. 당시엔 특정 가문과 타탄 간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각기 개성에 따라 원하는 지역의 타탄을 선택하여 입었다고 전한다. 1746년 컬로든(culloden) 전투 이후 영국은 스코틀랜드 영토를 점령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무기 소지와 더불어 격자무늬 킬트 착용을 금지하게 한다. 하지만 이후 새로이 개편된 연대에 하일랜즈 지역민들이 지원함과 동시에 통일된 타탄무늬의 킬트가 지급되고 이후 스코틀랜드인 군대 장교들이 보다 풍부한 무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 격자무늬 킬트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킬트는 영국 귀족들의 사교모임 등에서 입는 의복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최신 유행을 상징하게 된다. 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인데 역사학자 휴 트로버 로퍼(Hugh Trover Roper) 가문을 상징하는 타탄은 당시 영국 귀족이었던 월터 스콧(Walter Scott)이 하노버 왕가의 왕을 기리기 위한 축제 행렬을 꾸미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한다.
사진 :
1.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소장 중인 Carl Haag의 1854년작 "발모럴에서의 저녁"을 위한 예비스케치입니다. (35 x 25cm)
사진 출처 :
1. http://www.royalcollection.org.uk/
참고 자료 :
Patracia Rieff Anawalt의 저서 The Worldwide History Dress (p.121)
* 본 칼럼은 The Worldwide History Dress의 121 쪽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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