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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 1 [당신에게 닿기까지 ]

  한 여자가 디자이너 브랜드 편집매장에 들어선다. 진열대에 늘어선 악세서리와 구두 그리고 행어에 걸린 옷들을 훑는다. 하지만 이 여자는 오늘 계획이 분명하다. 이미 지난 친구의 쇼핑을 따라 나설 때 보았던 큼직막한 플라워패턴이 입혀진 플레어 원피스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여자는 원피스가 걸린 곳을 향해 곧장 나아간다. 다시 꼼꼼하게 훑어본 여자는 매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룸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그는 자신의 헤어스타일, 백들과 신발장에 늘어선 구두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더해 상상 해본다. 마지막으로 다시 가격을 확인해본다. 그 순간, 여자는 도망치듯 드레스룸을 빠져 나온다. 문득 SPA 브랜드에서 이것과 비슷한 플라워패턴 디자인의 원피스가 있던 게 생각났다. 가격 또한 지금 본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다. 여자는 매장을 빠져 나오면서 생각한다. 저 원피스와 같은 가격으로 원피스를 두어 벌 사고도 스카프를 하나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몇 시간 뒤, 그가 쇼핑을 끝내는 건 또 전혀 엉뚱한 곳에서일 것이다.

  하나의 디자인 제품이 매장에 들어서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그만큼의 가격이 책정 되었고 또 그러한 원단이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그 디자인이 어떠한 과정과 고민 속에서 결정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구매자 입장에선 피곤한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현명한 구매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 옷들과 악세서리들이 당신에게 닿기까지 어떠한 질문들을 남겨두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영국의 글로벌패션기업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이하 M&S)는 Showopping showpping과 swapping의 합성어 이라는 캠페인을 시행 중에 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객이 자사 매장을 찾아 헌 옷을 SHWOP 박스에 담으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준다. 이렇게 모인 헌 옷은 옥스팜Oxfam (92개국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17단체의 국제 연맹으로 빈곤층을 위한 구제 기관)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렇게 보내진 헌 옷은 다시 재판매가 되거나 섬유로 재생산되어 환원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한 모든 수익금은 세계의 빈곤층들을 위해 사용된다.
현재 영국에서는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수많은 헌 옷들에 대해 큰 사회문제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M&S는 이에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윤리적 소비를 끌어오기 위한 지속적인 캠페인 활동을 시행 중이다. 그렇다면 왜 M&S는 이러한 대량의 헌 옷 쓰레기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을까. 이건 단순히 패션브랜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M&S는 현재 SPA 브랜드이다. SPA 브랜드라는 것이 사실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1986년 미국 청바지 회사 GAP이 도입한 개념으로, Speciality Private Label Apparel의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제조 직매형 의류점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는 기획에서부터 생산, 유통, 판매를 1개 회사에서 통합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시스템은 마치 월마트, 이마트와 같은 대형할인상점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에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다양한 디자인 종류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에 한 장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국제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시기에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에겐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허나 이러한 SPA 브랜드들이 의미 없는 소비를 부추겨 더 큰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과 보다 큰 소비욕을 불러온다는 것에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1-2주 간격으로 디자인이 새롭게 회전되어 신상품이 나오는 탓에 검증되지 못한 타 브랜드의 유사 디자인이 반성 없이 생산되는 점도 문제이다. 근래엔 제일모직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가 가로수길에서 첫 오픈을 하자마자 디자인 카피 등으로 인해 소규모 브랜드업체들이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가 브랜드카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SPA 브랜드의 구조시스템은 대형할인점을 닮았다. 과거 1995년 8월, 동양수퍼마켓개발㈜을 전신으로 한 메가마트의 첫 할인점이 부산 동래에서 문을 열었다. 이를 기점으로 이후 수많은 국내외 대형할인점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영세한 시장들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SPA 브랜드는 2008년 이후 끊임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할인점의 행보와 마찬가지로 SPA 또한 이러한 시장불균형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저가의 흥미롭고 다채로운 취향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들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보라. 우리는 SPA 브랜드 품속에서 고가의 유명디자이너들과의 의미 없는 협업만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금번 H&M과 마르지엘라와의 협업 또한 그리 기쁘게 다가오진 않는다. 우리는, 현명한 소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진출처) 트랜드 인사이트 http://trendinsight.biz




Banal Contributor PAK SUN WOO
facebook.com/sunwoo.pak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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