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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월 00일을 기록

렌즈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



오늘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다 전자렌지 얘기가 나왔다. 새 전자렌지가 요즘엔 저렴하게는 6, 7 만원이면 살 수 있다니. 
지구 위에 공장이 들어선 지 대략 200 년 가까이 되었나. 의복이 대량 생산되고 식료품도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요즘, 애초부터 공정을 통해 생산된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해가 갈수록 가격이 저렴해지고 있다.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국의 최초 사진가라는 타이틀로 알려졌던 김석배(88세) 선생님을 만났다. 1930 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유럽, 미국의 경우도 1970 년대까지 카메라라는 것은 그리 대중화되지도 못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물건은 아니었다. (하물며 예술사진에 대한 담론이 깊이 있게 오간 것은 - 앵그르, 발터 벤야민을 제외한 - 불과 2, 30 년 이전부터였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가 보다 가속화되면서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이 가속화되어 간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직 대체로 사진을 찍히는 것을 어색하게 여긴다. 렌즈를 들이댈 때 얼굴을 가리는 경우를 그리 낯설지 않다. (오히려 가리지 않고 당당한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한 번은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찍어드리겠다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자 옷매무새도 갖추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냐며 급히 옷을 챙겨입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분들에게 사진이란 대체로 앨범이나 액자에 꽂아두어야 하는 역사의 작은 흔적이고 화석이니까. 그래서 되도록 곱고 단정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

흔하고 익숙해진 만큼 우리가 그것에 대해 다가서는 인상도 점차 가벼워진다. 곧 카메라 렌즈로부터 더 이상 달아나는 얼굴도 없어질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포토샵과 같은 소프트웨어 따위로 가공해버리면 되니까. 또, 그 남겨진 이미지가 평생 자신의 그림자처럼 남아있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어쩌면 부끄러운 얼굴들을 렌즈에 담는 일이 그리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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