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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월 00일을 기록

8월 20일, "미시령에 새긴 흔적"


  내가 처음 미시령 고갯길을 넘어가기 위해 톨게이트 앞에 멈춘 것은 2007년, 겨울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50cc 스쿠터 한 대를 끌고선 울산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무작정 속초를 향해 달렸다. 달리다 졸음이 쏟아지면 찜질방엘 들어갔고, 빵이나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지갑엔 정확히 현금 10만원이 있었다. 지도를 펼치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내가 선 위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대한민국도, 내가 서기엔 너무 거대해보였다. 영덕을 지날 때 바다에 물린 국립공원으로 잠시 들어섰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였다. 검정색에 레자로 된 보스턴백과 담요 두 장이 위태롭게 스쿠터 엉덩이에 걸쳐져 있었는데, 화장실을 들어설 때 즈음엔 항상 시야에서 벗어난 채로 내버려두기 곤란했다. 몇번은 두고 왔고 또 몇차례는 짐 채 끌고 들어서기도 했다. 한번은 노숙자와 화장실 문 앞에서 눈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내 뒤에 세워진 스쿠터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어 다시 뒤돌아 엉덩일 붙이고 시동을 걸기도 했다.
  속초에 거의 다다를 때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제법 오랜 시간을 작은 도시에서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근 이틀 동안 바깥 구경도 채 하지 못하고 찜질방에 갇혀 라면을 먹거나 아이팟 음악을 듣고 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녹여야 했다. 한번씩 바깥에 나가 날씨가 풀렸는지, 길은 미끄럽지 않은지 확인했다. 돌아가기엔 늦었다, 라고 나는 되뇌이며 비가 그친 날 밤 다시 시동을 걸고 도시를 벗어났다. 그렇게 십 여 분 즈음 지났을까. 곧 비가 다시 내렸다. 바퀴 두 개 달린 작은 스쿠터로서는 레미콘이나 대형 차량이 밤거리를 질주하는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엔 위태로웠다. 커브길을 꺾어 도는 사이, 7번 국도 너머로 비를 품는 검은 바다가 펼쳐졌다. 잠시 그렇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등 뒤로 소릴 지르는 대형트럭 기척에 놀라 도로 한쪽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은 없었다. 나는 바다를 보며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나를 오빠, 형이라 부르는 피도 섞이지 않은 동생들을 생각했다. 몬도 그로소의 way home 1964가 귀구멍을 덮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힘이 빠지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었다. 도와달라고 소릴 치고 싶었다. 때마침 눈앞엔 두갈래의 길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곳은 작은 해안마을로 이어지는 듯했다. 하늘에선 곧이어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모텔 입구에 서서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수중에 5만원 가량이 남아있었는데 한 번 계산을 치르고 나면 남은 여정길에서 숙식은 커녕 스쿠터에 채워 넣을 기름값마저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여행 중인데 돈을 잃어버려서 몸을 녹일 곳이 없어요, 라고 나는 카운터 너머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거짓말을 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지나고 나서 왜 이렇게 후회가 되는지. 카운터 옆 문을 열고 나온 주인 할아버지는 온 몸을 기이하게 떨며 내게 다가왔다. 외할아버지의 병 증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밤, 그 모습을 보고선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의 병은 파킨슨 씨 병이었다. 약에 의지하지 않으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뇌세포가 파괴되는 병. 망가져가는 신체와 기억과의 사투. 그는 나를 그리 오래 바라보지도 않고선 따라오라는 몸짓을 건냈다. 말은 없었다.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 들어섰고 그는 문을 열어주고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얼른 옷을 벗어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그대로 이불 틈에 파묻혀 쓰러졌다. 그리고 자기 전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구걸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어, 라고.

  기억들을 다 토해내자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적 없는 해안가에 서서 눈이 바다로 쏟아지는 풍경을 CANNON AE-1P로 촬영했던 기억, 횟집에서 진수성찬을 얻어먹었고 그 뒤 할아버지에게 남긴 편지와 함께 스쿠터에 다시 몸을 실었던 순간, 속초 가까이의 밤바다 위로 어선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항해하는 풍경, 서울에서의 교통사고. 홍대입구역 앞에서 일주일간의 노숙 생활 그리고 고시원
그 모든 사건들이 부산과 현재 내가 있는 서울에 이르기까지, 미시령 고갯길이 관통선이 되어 모든 순간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