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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정호진, 월몰(Moonset)

 

 

십대 시절, 홀로 프랑스로 떠난 정호진은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디자이너 코스를 밟지 않았다. 2004 , 독학으로 파리와 홍콩에서 “Dans la rue” Exposition 전시를 시작으로 패션 현장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이후 2009 Academie Internation Coupe de Paris 졸업한다) 마르지엘라, 까샤렐, 에르메스 맞춤복 아뜰리에 Camps de luca 거쳐 현재 샤넬에서 일하는 중이다. Yjk danceproject 그리고 Marcus Groelle 함께 작업했고 현재 ldp 무용단의 안무가 김판선 분의 신작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2012, 그는 컬렉션 Moonset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거식증 악순환 되는 병을 끌어 안고 수작업을 견뎌야만 했다. 무거운 주제 속에 파묻힌 채로 말이다.

정호진의 Moonset 통해 주제와 작업에 대한 방향과 방식을 어떻게 끌어갔는지 글을 접하는 이들과 함께 단서를 집어보길 희망해본다.

   

 

 

 

예로부터 왕과 여왕은 해와 달로 비유되어 왔다. 컬렉션 속에 여왕은 고귀하고 백성들에게 존경 받으며, 아름답지만 전쟁과 정치, 반란 등의 상황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Moonset (월몰, 月沒) 하루 세상을 비추는 달이 떨어지는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컬렉션은 아름답고 화려하게 채워놓았지만 굉장히 어둡다.

이번 작업의 영감이 된것은 프랑스의 대문호 Voltaire 소설 Candide 속에 나오는 여성들이다. 소설 여인들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가장 추악하고 망가지며 " 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꺼야." 라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내용이 몹시나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다. 또한 베토벤의 Tempest 소나타, 연출가 Romeo Castellucci, 포토그래퍼 Letizia Battaglia 사진집 <Passion, Justice, Liberte>, Oscar Wilde 유미주의,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만난 앤틱 에서 영감을 받았다.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Classic 기반으로 정통성(Heritige) 전세계 숨겨져 있는 전통방식(Traditional) 이용하였고 모든 제작과정이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졌다.

 

내 지난 작업들을 돌아보면 1960년대 일본의 카즈오 오노Kazuo Ohno에 의해 탄생한 허무주의와 속울음을 내포하고 있는 현대무용 부토舞踏, butoh - 1920년대, 히지타카 다쓰미Hijitaka Dasumi, 카즈오 오노Kazuo Ohno에 의해 탄생한 전위 무용극에서 영감을 받아 2차 세계패전의 허무주의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표현하려 했던 Ashes. 그리고 고대 이집트 잠언 "신을 위해 단을 쌓고, 그 안을 화려하게 채워놓았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 죽어간 이들을 위로할 이는 없다." 에서 영감을 받아 신앙을 비판하고 그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Il m'arrose (그는 내게 물을 주네) 등등 언제나 내 작업은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보단,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게 했다.

 

 

 

 

월몰月沒, Moonset

 

나는 이번에 월몰月沒, Moonset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유럽권에서) 월몰moonset은 은유적 표현으로, 여왕의 몰락을 뜻한다. 오래 전부터 모든 사물에 성sex을 구분했던 유럽에선, 왕은 그들의 태양sun이었으며,  여왕은 그들의 달moon이었다.

그 몰락하는 상황은 전쟁, 정치적 상황, 왕위계승, 왕권을 거스를 다른 힘 등에 의한 결과이다. 이 소재를 선택하도록 이끈 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볼테르Voltaire 의 캉다드Candide 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었다. 캉다드는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잘 이루어져있도록 존재한다." 라는 낙관주의적 의미를 표현하는 철학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여성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자라난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인데, 그 여성들이 어떻게 추하고 더러운 곳까지 떨어졌는가에 대한 많은 경우를 주었다. 그녀들이 과거엔 어떻게 아름다웠고, 추해지기 위해서 어떠한 상황을 거쳤으며, 어떻게 추해졌는지를 표현한 문장들은 그 디테일들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강렬해서 내가 하는 상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전방식

이번엔 이러한 요소들을 표현하기 위해 현재 사실상 죽음을 맞이한 고전 방식의 디테일들을 이용해볼까 한다. 이미 패션계의 규모는 어마한 크기의 산업화가 형성 되었고, 좀더 빠르게, 좀더 싸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것을 빼고, 저것을 빼버린 채로 진화해왔다. 그러면서 고전방식의 것들은 점점 잊혀져 오히려 오늘날에는 그 고전이라는 게 대중에게 새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번 작업에서는, 주름smock을 만드는 푼토 캐피톤punto Capitone , 사이에 케이블을 끼워 넣고 손으로 완성하는 단추구멍 부토니에 밀라네즈boutonniere milanaise. 접착심지가 아닌 말꼬리를 옷에 직접 꿰어 옷의 형태를 지탱하는 어샘블리지assemblage, 얇은 실크를 접선부위에 꿰매어 다림질을 대신하고 접힌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바티bati, 자수를 이용해 원단위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브로드리broderie 그리고 고래 심줄을 이용한 것이 기본이 되었던 와이어를 넣는 코세트리corseterie.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부분들 손으로 직접 작업을 하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산업혁명으로 공장의 존재가 생겨나기 이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는 이렇게 작업을 했을 것이며, 컬렉션의 주인공이 된 그녀들은 이런 옷을 입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좀 더 본연의 옷을 마주하고 싶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보려 한다.

 

템페스트 소나타tempest sonata

컬렉션의 전체 느낌은 베토벤의 템페스트 소나타tempest sonata 와 같다. 내가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인데, 아무래도 가장 많이 듣고 그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비주얼적, 감성적으로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이 곡을 가장 주관적으로 풀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화려한 기교 일색이고, 숨가쁘게 벅차지만, 굉장히 불안하고 어둡다. 전혀 즐겁지 않다. 내가 만드는 옷 또한 그렇다. 위에 말한 디테일들로 가득 채워놓고 예쁘게, 화려하게 만들어 놓아도 전체의 느낌은 아주 어둡고 슬프다.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베토벤에서 분위기를, 캉디드에게서 스토리를 가져왔다면, 비주얼을 가져온 건 이탈리아의 예술가,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이다. 그의 직업은 미터 엔 씬metteur en Scene. 인데, theatre 또는 비디오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비주얼을 만들어내며, 그 극의 살을 붙이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내용의 전기와 후기를 쭉 연결, 진행시키는 일반적인 연출과 달리, 과한 표현방식과 하나의 극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것에 더욱 치중이 되어있다. 작년 겨울에 파리의 띠에트리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 에서 있었던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국립무용단 친구의 추천으로 공연을 보고 왔는데, 공연장 앞에는 시위대와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기까지 신분을 검열, 가방검사를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공연 한 편의 관람을 위해서 라기엔 대단히 놀라운 절차였고 시간에 맞춰 칼같이 시작하는 일반 공연과는 달리 40분 가량 시간이 늦춰진 후에야 시작이 되었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는데, 공연 제목이 신의 아들의 얼굴의 컨셉 위에서Sul Concetto di volto nel figlio di dio이었다. 공연은 "당신은 나의 목자가 아니다." 라는 내용으로 종교비판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렇기에 독실한 기독교계 사람들은 공연을 비판하며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없도록 제지했고, 전경은 그들과 대치했던 것이다. 공연내용의 주제는 상당히 흥미로웠으나 막상 공연은 내 마음에 썩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그 공연을 본 이후 어느 날은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서 책을 구경했다. 그러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서점의 판매원이 물어보았다. 로메오 카스텔루치 좋아하니, 라고. 책을 고를 때 살피지 못했던 책의 표지를 보니 그건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책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는 그림이 나와 많이 달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문제적 상황들을 늘 담아내고 있다. 비평가들에겐 찬사가, 사회적으론 비평이 아주 분명하게 양분되는 예술가인데 그가 표현하는 것들은 대게 이렇다. 거식증의 여성을 무대 위에 올리거나, 비만으로 인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에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을 산소호흡기에 의존시킨 채 무대에 올리거나, 동물학대와 과도한 실험, 전쟁 등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것 등. 그의 책은 내용보단 그의 작업에 대한 비주얼을 많이 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 흥미로워하는 것들로만 묶어놓은 책이었다. 현재는 그 책에서 제시되는 비주얼에서 많은 영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반되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비주얼은 대단히 놀라워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Moonset , 어떠한 개인이나 사회를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여성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는 건,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것 같다.

 

작업 과정

종이 위에 패턴을 완성한 후, 원단으로 만들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광목Toile a patron을 이용해서 샘플을 만들고, 가봉을 마쳤다. 확실히 종이 위에서 완성시킨 후, 마네킹 위에 입혔을 때. 또 그것을 신체에 입혔을 때 나오는 모양새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초기의 생각과는 다르게 수정사항들이 생긴다.

수정사항들을 꼼꼼히 기입한 후 실제 제작에 나선다.

 

전통방식의 테일러링에는 많은 준비작업이 필요한데, 가장 먼저 시작했던 건 테일러 칼라를 만들기이다. 깃의 형태를 계속 유지해주고, 그 뻣뻣함 위에서 원단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기성복에서 사용하는 접착심지가 아닌, 칼라 심지Toile de col을 이용해 재단을 시작하고, 그 아랫부분을 부드럽고 짜임이 균일하지 않아 형태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울 소재의 fautre를 댄다.

 

* 기성복의 접착심지는 두께도 다양하고, 다리미의 열의 의해 접착이 되기 때문에 빠른 일에는 수월하지만 심지에 붙어있는 풀로 인해 원단을 부착시키면서 원단이 본래 가지고 있는 수축과 움직임과 같은 성질들을 제거해버린다.

 

칼라 심지와 fautre 를 실로 이용해 고정시키고, 칼라가 최종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를 고려해 손바느질을 해주는데, 두 가지를 확실히 고정해야 하나, 바느질의 형태가 남아있게 되면 보기 싫어지기 때문에, 바늘을 찔러 넣어 손가락에 살짝 찌를 때쯤 다시 빼내어, 둘은 분명히 고정이 되어있으나 바느질 자국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수백 번을 반복 하다 보면, 손가락은 어느새 터져 피가 나기 시작하고, 바늘이 닿기만 해도 찌릿찌릿해지는데. 맨 처음, 이 칼라를 만들던 당시가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개를 만들고, 손가락을 다 터져서 욱신욱신 거리며, 전통방식을 처음 접해봐서 "도대체 이렇게 왜 해야 해? 뭐가 더 나은 거지?" 라고 매일같이 불만 가득 되새겼다. 하지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알아가고, 피가 나고, 새살이 돋으며, 다시 살갗이 터지고 손끝이 단단해져 가는 걸 보며, 좋은 갑옷이 생겼다는 것에 자랑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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