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발행된 소년지 내용 중에는 "황태자
전하와 이등 태사"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 설명에는 "일본에
御遊學 하옵시난 我황태자전하와 太師 伊藤博文公"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등 태사는 이등박문 그러니까 당시의 이토 히로부미를 말하는데, 당시 고종의 스승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식의 내용이다. 당시 일제 치하의 검열이 만연했던 점을 감안한다해도 최초의 동인지에 안타까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또, 여기엔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기록된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가 쓰여 있는데 최남선 본인(당시 17세)은 당시 이 시를 새로운 시가로서 공표하지도 않았고 뚜렷한 언급이 이후로도 있었던 적조차 없다. 무엇보다 이 시를 바이런(Byron G.G)의 시 "대양(the ocean)"에 대한 번안시로 바라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시를 신체시로 놓고 보느냐 아니냐를 두고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 크게 나뉘어진다는 거다. 우선 많은 관점들을 다 놓고 보아 이를 최초의 신체시로 인정하지 않으면 근현대 시의 역사가 몇 십 년 뒤로 후퇴해야만 하는데 그에 대한 짧은 역사의 딜레마를 관철하기엔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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