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brielle Bonheur Chanel
(1883~1971)
하우스 오브 샤넬의 설립자 코코 샤넬(Coco chanel 본명은 Gabrielle Bonheur Chanel)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 오벨뉴 지방 소뮈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친 잔 드볼이 별세한 12세, 아버지 알베르 샤넬에게 버려져 고아원 등을 전전하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본래 그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카바레에서 노래하던 젊은 시절, 교제중이던 군 장교 에튀엥느 발장과 만나게 되면서 카바레 생활을 접고 파리근교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그 시간은 지루함의 연속일 뿐이었다. 1909년, 이십대 후반의 그녀는 발장의 후원으로 마르젤브 거리 160번지에 모자가게를 개업하게 되는데, 이것이 하우스 오브 샤넬의 출발이 되었다.
이후 드뷜에, 메종 드 꾸뛰르 등을 오픈하게 되면서 의상들을 제작하게 되는데 1916년 콜렉션 발표는 샤넬이라는 이름을 프랑스의 큰 화제로 만들기에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남자와의 교제는 그에게 늘 불행 아닌 불행을 안겨주었다. 그의 초창기 후원자이자 연인, 남편이었던 군 장교 카펠이 사망 후 화려한 사교계의 거물이 되었는데, 교제했던 모든 남자들은 갑작스레 사망하거나 파산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그는 불행한 사자자리의 여자라는 별명으로 사교계 인사들에게 불리어 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1940 년 당시 친독계열의 비시 괴뢰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일군 장교와 애인관계를 맺었는데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선 매국노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그가 살아생전부터 참신한 소재와 기능적인 디자인으로 여전히 큰 인기를 얻었고 1955년에 이르러 <지난 50여년간 큰 영향력을 가진 패션디자이너>로서 모드 오스카 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후 1971년, 파리 릿츠 호텔에서 컬렉션을 준비하던 샤넬은 87세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현재 프랑스가 아닌 망명생활로 도피했던 스위스 로잔에 매장되어 있다.
아직까지도 샤넬을 얘기할 때, “남자에게 지배당하는 여성을 해방시킨다.” 라고 말하지만 정작 이러한 주장을 살아생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선전은 그가 죽은 후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위장된 것이라 밝혀졌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핸드백에 끈을 사용하거나 편하고 기능적인 복장을 제작하였고 저지 소재의 짧은 스커트 그리고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기능적인 샤넬 수트 등은 당대 여성들의 걷는 방식과 움직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당시 르네상스의 향수에 영향을 받은 지나치게 많은 장신구들의 착용을 배제한 복식 제안에는 분명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아래는 모드 오스카 상을 수상한 4년 뒤인 1957 년에 열린 Défilé de la collection show 영상이다.
참고문헌 : 야마구치 마사코 - 《샤넬의 진실》 2008년 판
Editor PAK SUN WOO
@UNDRE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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