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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Sound Designer Lee Ungho

Sound Designer, Lee Ungho

사운드 디자이너, 이웅호

 

 

 


- 이웅호, 나를 흥분시켰던 패션 음악들

 

 

당신은 올 겨울 프랑스에서 열린 정호진(현재 샤넬에서 모델리스트 일을 하고 있다)의 개인 컬렉션 Moonset(월몰)의 쇼를 위한 음악을 전개했다. 그와의 작업은 어떠한가
 

호진 씨는 늘 신선한 컨셉과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덜컥 걱정을 앞서게 한다. 하지만 몇 년 간 같이 일해온 디자이너기에 고유의 스타일을 파악 하고 있다. 그건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된다.

호진 씨는 컬렉션 진행에 관한 초반 기획사항 땐 늘 영감 받을만한 다양한 자료를 미리 섭렵해 전달해 주는 게 장점이자 그의 친절이다.

어떤 컨셉이었나. 요구된 어떤 사항이 있었는지

처음 원했던 곡의 컨셉으로 왕의 몰락 혹은 성전이 무너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유사한 느낌은 베토벤의 tempest 였는데 되도록 이 곡을 쓰고 싶다는 게 호진 씨 입장이었다. 더 좋은 곡이 나오지 못할 거라는 냉정한 조건에서 말이다. 늘 그랬지만 호진씨랑은 웹에서 모든걸 소통해야 한다. (정호진 디자이너는 프랑스, 이웅호 디렉터는 한국에 있다) 유사한 느낌의 컬렉션을 사이트를 통해 함께 보거나 영감 받을 만한 음악도 링크로 걸어 느낌을 공유 하는 식이다. 이런 피드백 과정이 힘들지 않냐 생각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매우 편리하고 좋다.

되려 불편하지 않은가


 
오랫동안 그래왔는데 내 주거지역이 실무적으로 볼 때 전혀 패션이나 음악과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거기다 내 성격이 정말 깜깜하고 내성적이기 때문에.(웃음) 눈만 보고도 괜히 머쓱해 내 의견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 못할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장거리 소통, PPT 등을 이메일로 모든걸 소화하며 내 결점을 가리는 식으로 일한다. 나름 비운을 가지며 사는 거다. 가끔 15년 지기 친구 전화도 낯 뜨거워서 못 받을 때가 있을 정도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말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는데 호진 씨는 현재 파리에 거주를 하다 보니 시차가 틀리다. 그 점은 조금 힘들었다. 전체적인 선곡 방향은 MODERN CLASSICAL 혹은 아방가르드 계열의 음악들로 구성 됐는데 모두 취소되었다. 곡의 색깔 여부도 그랬고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베토벤의 tempest가 가장 확고했다.

 

그 즈음 포토그래퍼 Ugo Richard와의 작업 결과물을 받았다. 가슴이 무척 뛰었다. 호진 씨의 컨셉 전달이 이미 너무 뚜렷하고 정직해서 변동이나 작업에 크게 반영 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자극이 무척 되었다.

 

곡 선정에 대해 다소 아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최종적으로 tempest와 두 곡이 더 결정됐는데 전혀 뜻밖이게 실험적인 부류의 음악들이었다. 물론 컨셉에 근접한 고전적인 분위기를 띄었다. 이 세 곡으로 시퀀싱을 짜거나 혼합을 시키자는 의견이 나와 여러 샘플들을 만들어 함께 들었는데 억지로 짜맞춘 느낌도 강하고 너무 다른 요소의 음악들이라 불협화음을 내었다. 또 한 번 곡을 버려야 할 상황이 찾아온 거다.

저는 대안을 제시할 뿐 선택은 클라이언트의 몫이에요. tempest로 직구를 쏘느냐, 아니면 나머지 음악들로 변화구를 쏘느냐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컬렉션 월몰을 벗어나 과거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무 살 무렵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패션을 전공하지도 그렇다고 음악을 정석으로 배운 것도 아니었다. 고교졸업 후 대학진학도 하지 않았다. 뚜렷한 미래를 설계하거나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이 무의미하고 나태한 스무 살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친구를 통해 건너서 알게 된 모델 지망생 친구를 만났다. 멋있었다. 그때부터 패션, 화보 등에 관심을 가지고 훑어보게 되었는데 그 이전까진 시골에서 자라오던 내게 있어 패션이란 가벼운 남자들의 허세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인식부터가 바뀐 거다. 그 당시엔 주지훈, 예학영 등이 탑 클래스 모델이었는데 화보나 쇼에서 비치는 그들의 모습에 완전 매료 되었었다

컬렉션쇼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생에 처음 관람하게 된 컬렉션이 현재 해외에서 Juun.j로 활동 중이신 정욱준 선생님의 Lone Costume 쇼였다. 멋진 의상과 조명 그리고 모델들의 캣워크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음악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쇼가 앞으로 내 청춘을 바꿔놓게 된다.

 

  (사운드 클라우드 첨부 #1 Vision And Orchestre De Jaesalmer - Silver Cox)

 

  사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미칠 정도로 좋아했다. 하우스, 테크노, 앰비언트, 홈리스닝 등 어릴 적엔 그런 취향이 부끄러워서 숨겼다.

첫 컬렉션쇼를 보고 난 후 한참 제목조차 모르는 음악이 아른거렸다. 갖고 싶은 음악 듣고 싶은 음악은 기필코 공수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말이다. 검색포탈서비스 사이트 이곳 저곳을 다니며 곡의 아티스트 출처를 알아내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 음악카페 사이트 링크를 걸어 주었다. 카페 주인장님이 곡명과 아티스트를 알려 주었는데 처음엔 막연히 음악 전문가이신 줄로만 알았다. "아 좋은 공간, 좋은 분이시구나" 그 이후 취미로 나도 해외음악을 열심히 공수해서 카페에 정보 공유도 하고 그랬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카페 주인장이 현재 서울패션위크에서 음향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충우(Show Music Pproject 대표)실장님이었다.

 

", 이런 멋진 일을 하는 매력적인 직업이 있구나!" 생에 처음으로 정말 제대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설레기 시작했다. 퇴근 후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정말 음악만 미치도록 찾아 듣고 다녔는데, 요즘과 비교했을 때 그 당시엔 해외 사이트에서 CD를 구입하거나 혹은 정말 어려운 방식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음악 사서 들읍시다!)

  아무튼 정말 열심히 듣고 (컴퓨터를 통한) 사운드 툴도 다루는 식으로 줄곧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첫 패션쇼음악은 언제 주문을 받았나

 

웹에서 패션작업 하시는 분을 알게 되어 처음으로 용기 내 음악을 맡겨 달라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하셨다. 퇴근하고 늦은 새벽까지 이마가 책상에 닿도록 졸린대도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 제 젊음이 감사할 따름이었죠. 내 생에 첫 결과물을 낳게 해준 바로 그 클라이언트가 가장 최근 작업한 정호진 씨 (디매거진 관련 링크 : http://d-magazine.co.kr/sub_view.asp?uid=1550)이다.

 

 컬렉션을 위한 첫 음악 작업이 끝낸 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에 06, 07년도가 국내 인디 브랜드, 인디 패션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현장이 생성될 즈음인데 그런 분들의 디자이너 개인쇼를 찾아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패션쇼를 한 것이다. 입문영역이 매우 좁은 분야인데 나는 운이 좋았다 생각한다.

 

다만 내가 시작하기 전 그렸던 업무 풍경과는 확연히 틀렸고 진행 와중에도 혼자 많이 막혀 애를 먹어야 했다. 난 홀로 독학을 했을 뿐 특별한 디렉팅을 배운 게 아닌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당연하게도 연출 부분에서 이론적으로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 클라이언트들과 많은 소통도 오가야 하다 보니 성격적으로도 유연해야 했다. 덕분에 음악적으로는 일을 하면서 쟝르의 폭이나 견해가 더 넓어지게 되었다.

 

패션쇼 음악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패션쇼 음악이 즉흥적으로 선곡해내거나 단순히 모델의 워킹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통 일반적이다. 하지만 패션쇼 음악이란, 기획초기부터 디자이너의 컨셉을 바탕으로 뮤직디렉터의 철저한 구성아래 쇼의 전체적인 기획과 함께 가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디자이너와 함께 어디서 받은 영감들 가령 영화, 음악, 공연 등에서부터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많이 나누게 된다. 그들이 선호하는 취향도 알 수 있고 표현욕구라던가 옷에 대해서도 더욱 긴밀히 얘기를 주고 받다 보면 나도 그에 맞는 대안들을 준비하는 거다. 그럼에도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역시 옷인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하고 신선한 음악이라도 옷에 배려가 없으면 좋은 쇼가 아니라고 본다.

패션쇼는 사실 기성 디자이너건 신인 디자이너건 관계없이 그들에게 있어 비즈니스이지 않은가.

간혹 안타까운 때가 있다. 누가 쇼에 옷을 보냐 오락적인 요소를 더 원한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정말 의외로 많은데 본인들이 개인의 행사에 애착이 없으면 옆에 스텝들은 더 힘들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한다. (신진에게서 많이 보이는 경향)

 

 

일 년 가량 슬럼프를 겪었다는 얘길 들었다

 

시간이 흐르다가 또래 애들이 제대할 때쯤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스무 세 살 겨울이었는데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편곡 마무리 작업했던 게 기억난다. 곡만 전달해주고 입소한 거다. 그땐 몇 배로 슬펐다.(웃음) 늦깎이 전역자로,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섰을 땐 정말 앞이 캄캄했다.

   사실 실무에 계신 선배들도 음악으로 패션일 하는 것에 염려도 많고 나도 용기를 많이 잃었다.

 생계는 정말 원초적으로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래저래 끈을 놓지 않았다. 새로운 인연들도 만났다.

 

 그러던 사이, 1년하고도 반 여 년 동안 지금까지 슬럼프에서 못 빠져 나왔다. 음악적인 부분도 있고 개인적인 여러 사항들이 겹쳤다. 처음 고백하는데 사람을 만나고 음악을 내는 것이 어느 순간 겁이 난다. 시발점은 아직 찾질 못하고 있는데 슬럼프가 길어지니 내가 일을 하면서 힘들기만 하는 거다. 작년 부산에서 가진 신진 디자이너의 컬렉션 음악을 마무리 하고 정말 영문도 모른 채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감정 추스를 기간도 없이 곧장 다음 프로젝트 음악을 준비했다.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가

 

늘 작업할 때마다 관객석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한다. 내가 처음 쇼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누군가 받고 있을 생각을 하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 한 분이라도 있었다면 좋겠다.(웃음) 아무튼 그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일의 동기부여인 셈이다.

 

같은 일을 꿈꾸는 후배가 있다면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늘 되뇌는 말이 있다.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은 우주와 땅 차이라고 말이다. 패션 일이 표면적으로 화려하고 멋진 건 사실이다. 다만 진심 없이 겉치레만 보고 뛰어들면 얼마 견디지 못해 상처받고 고개 숙이게 될 것이다. 나도 아직 수행중인 신예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디매거진을 빌려 특별히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외국과는 달리 패션 뮤직디렉터란 직업이 갖고 있는 업무에 비해 너무 심심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안타깝다. 국내 현역선배들 음악만해도 파리 밀라노 뉴욕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쇼를 볼 때에 우리들 음악에도 보다 더 귀 기울여 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이다.

 

올 해 특별히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

 

올해 장비부터 프로그램 모든걸 새롭게 정비하고 정말 제 음악을 시작해볼까한다. 나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되어 100프로 나만을 위한 것을 내보려 한다. 준비 중에 불과하지만 시간의 여유를 두고 완성도 높여볼 계획이다. 기대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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