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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shic Record

수레무대, 스카펭의 간계



몰리에르 그리고 꼬메디아 델 아르떼

한창 극단 고도에서 연극을 하고 있던 스무 살의 내가 처음 수레무대의 김태용 연출 선생님을 만난 것은 경남 진주에서 열린 연극 페스티벌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일 간 이어졌던 공연들이 끝난 저녁, 여러 소극단 배우들과 스탭들이 바닷가 앞에 꼬깃거리며 모여들었다. 우리는 땅콩이나 마른 멸치 따위를 안주삼아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한 켠에선 극단 연출님들이 모여 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로 지방 공연에 대한 시청의 지원정책이라던가 몇몇 극단 레퍼토리에 대한 토론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김태용 연출님 몰리에르 극에 대한 얘길 꺼냈다.

 

'스카펭의 간계'는 몰리에르의 작품들 중 꼬메디아 델 아르떼(Commedia dell arte)의 색채를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태용 선생님은 이 작품을 위해 직접 이탈리아에서 원서를 찾고 가공된 해외 번역이 아닌 원어를 직접 해석, 대본에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작품은 몰리에르 전집 중 첫 부분에 해당하지만 사실 몰리에르 본인이 쓴 것인지조차 명확하게 판명이 된 것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몰리에르 전문 극단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김태용 선생님 본인이 말한 바와 같이 수레무대는 엄연히 몰리에르 전문극단이 아니다.

 

이 공연은 수레무대를 통해 1992년 초연을 시작으로 레퍼토리 극으로써 현재까지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공연되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갔는데 현재 이들의 꼬메디아 델 아르떼는 볼거리가 많은 공연으로 재해석되었다. 허나 보수적이었던 90년대 초반 현란한 아크로바틱과 독특한 동선 등으로 짜여진 무대는 관객들로부터 굉장히 충격적인 공연이었다. 이후 난타 등과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몸짓동작과 소리, 리듬감 등으로만 재현되는 공연) 2000년대 들어서 등장한 점프 등이 점차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야 익숙해질 수 있었는데, 그렇게 쌓여 가는 시간만큼 스카펭의 간계 또한 새로운 시도들이 첨가되고 덜어내면서 발전되어 갔다.

 

올 해 2011년의 스카펭의 간계 공연을 찾은 나는 김태용 선생님이 이번 공연 팜플릿에 지난 스카펭의 간계 공연들의 포스터와 연보를 처음으로 표기해 놓은 것을 보곤 탄성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김태용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국내 비평가들은 해외와 달리 레퍼토리 공연 하나만을 보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아. 나는 이미 지난 시기에서부터 작품 전체를 제시하여 어떤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어. 이제는 내가 무얼 하려 했는지 알겠지."

 

김태용 연출 선생님의 작업 과정을 패션 디자이너와 비교해 본다면  그는 철저히 고증과 연구를 통해 옷을 재단하는 클래식한 오너일 것이다. 한국에서 몰리에르극을 (몰리에르는 셰익스피어 이상의 극작가로 평가되나 국내에는 소개가 부족해 대중적인 영향이 부족하다) 완성도 있게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김태용 연출의 몫이 크다. 오래된 고전을 꺼내어 놓곤 끊임없이 당면해야 하는 질문과 해답을 풀어 놓으며 십 년이 넘는 씨름을 해야 했다. 그 과정은 고집스럽고 강직한 클래식 연주자 혹은 지휘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2010 <스카펭의 간계>를 연습하며

무려 1시간 42분이라는 초단축 공연시간을 기록하면서도 이야기를 날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이 공연은 2시간짜리 공연이다. 애초 연습과정에서 어렌지를 하여 시간을 단축시킬 것인가 템포를 잡아 어렌지없이 10분을 줄일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10월 28일 첫 공연까지 연습 가능한 일수는 대략 7~8일 정도. 잘 계산하고 템포조절을 잘 한다면 1시간 50분 소요, 원작 그대로 무대에 올릴 수 있겠다 싶다. 17년전 창단 공연 당시 2시간 나왔던 작업이었지만 연기자들의 능수능란한 템포조절 능력과 훈련 덕분에 어렌지 않고 1시간 50분에 끊을 수 있었다.

관객의 심리와 드라마의 리듬을 모두 감안하면 1시간 50분이 적정 시간일 거라는 판단은 상당히 감각적인 판단이다. 설명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무척 복잡하다. 변수까지 끼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백원길의 참여가 무척 큰 힘이 되었다. 그는 나와 13년전 <어린왕자> 제작때 첫만남이 이루어졌고 당시도 큰 감동을 주었던 배우였다. 이후 그는 <점프>라는 대흥행 작품을 연출했고 임도완연출이 이끄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서 주요배역들을 소화해온 탓에 훈련된 수레무대 배우들과의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간다의 간판배우 진선규의 참여 역시 수레무대로서는 큰 선물이다. 수레무대 출신이자 동아연기상 수상자인 김정호와 유병은도 오랫만에 반가운 재회로 작용했다. 또다른 극단외 배우인 박지홍군의 성실한 자세와 잠재된 감각역시 연습 과정에서 즐거움을 선사했다. 수레무대의 여성 연기자들은 무대경험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드라마를 꾸려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아마 1년쯤 이 작업이 지속되면 좋은 연기자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연습 과정은 8월 태풍과 멈추지 않는 빗줄기 덕에 큰 착오가 생겼다. 중력 법칙을 이겨내야 하는 등퇴장 훈란이란 게 하루에 2~3시간씩 일정하게 해야 습득되는 원리인데, 8월 한 달을 공치는 바람에 몰아서 연습하다가 연기자들의 근육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현재도 연습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리한 요구를 금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스펙터클한 맛보다는 드라마의 힘에 심혈을 기울이는 쪽으로 선회했다.

뚜껑이 열려봐야 알겠지만 큰 문제가 없다면 평가가 나쁠 상황은 아니다. Basic에 대한 투자는 10년으로 족한다. 이후 드라마가 분명한 작업들로 진행될 것이며 어느 시점쯤 분명히 평가다운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 넉달간의 연습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백원길 선수가 맨손으로 낚아올린  숭어의 회맛이었다. 간간히 낚시로 즐긴 횟감안주의 막걸리 맛도 좋았고 40대 전후의 연기자들의 우정쌓기도 보기 좋았다. 수레무대 단원이 아닌 새로운 식구들과의 조우는 단원 모두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어 향후 극단의 운영방침에 몇몇 변화를 예감하게 만든다.

합숙을 함께하는 수레무대 단원은 현재 8명이고 흔들리지 않는 멤버이다 보니 이 숫자로 만족한다. 다만 새로운 작품 제작시 연기자 수가 맞지 않을 경우 반드시 외부 연기자를 끌어들여야 하고 그들의 스케쥴을 감안한다면 더블 혹은 쓰리더블의 경우수를 예상하여야만 한다. 수레무대는 언제나 준비된 레퍼토리를 장점으로 극단을 운영해왔기 때문에 1회성 대학로공연으로는 극단운영이 힘들다. 때문에 내년이면 <스카펭의 간계>의 소극장 버젼으로 긴 시간 관객들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석달이 넘는 장기공연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수레무대가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짜리 장기 공연을 계획한다는 점은 변화 중에 큰 변화이다. 많은 대학로 친구들을 만날 심산이고 어느 정도의 빚도 감수해야 하는 변수들도 인정해야 한다. 


2010/10/13 수레무대 연출 김태용 선생님의 웹사이트 글 중에서

http://www.wagon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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