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월 00일을 기록

8월 3일, "8월 3일의 단서, 생각 없는 생각"

UNDRESSER 2011. 8. 18. 18:47


8월 3일의 단서, 생각 없는 생각
지금 당신은 친구를 만나러 간다. 오늘은 친구가 다른 동창 친구와 함께 당신을 만나러 온다고 한다. 그렇게 한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 당신은 또 그렇게 자신과 다른 인생을 휴대폰 주소록 구석에 밀어넣게 된다. 

지구를 살아가면서 평균적으로 사람은 죽기 전까지 3,000 명의 이름을 외운다고 했다. 3 천 명, 하루 종일 그만큼의 숫자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악수만 한다고 해도 손이 부르틀 것만 같다. 인간의 살은 한 번에 그리 많은 만남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금 만나는 대부분의 인생은 또 어떤 지점에서 서로 다른 길로 어긋나고 나면, 간절했던 순간은 그대로 지난 과거의 풍경으로 정체된 채 서서히 내 속에 고여간다.

쌓이는 추억에 비례하는 만큼 인연이 꼭 쌓이지는 않는다. 만남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외로워서 자살한 일본의 한 여인을 발견하기까지 보름도 더 지나야만 했다. 죽은 뒤로도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지기를 만났을 때 보다 각별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준 관계의 안락함 탓이 크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남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것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불멸의 순간은 충동과 사건, 절망에 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평온과 안락함이 행복을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결핍과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갈망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한 문단에 묶어 다루기 곤란한 문장들 억지로 붙이는 것은 정리할 시간이 귀찮아서이다, 라는 끝까지 정리조차 않는 나를 보여주는 저의가 무얼까.

어쨌건, 사람과의 만남 그 자체가 외로움을 달래지는 못한다. 나의 인생과 그대 인생의 한 부분이 닮음을 인정하고 부딪힐 때에도 외로움은 극복하지 못한다, 라고 나는 말해야만 한다. 무엇으로 극복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팥빙수는 달콤하고 맛있다. 선희가 서울에 잠시 올라와 있는 동안 한 인생의 과거를 훑었고, 욕망과 결심을 보았으며 또, 새로운 친구를 얻었다. 계속 나아가면 결국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고 각각의 종교적 믿음에 따라 심판을 받거나 먼지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 사람은 계속 만나고 나는 언젠가 사랑은 있는거야, 라고 믿을 수 있겠지, 라는 글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