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월 00일을 기록

7월 5일, "낸시랭"

UNDRESSER 2011. 7. 19. 00:34


낸시 랭
  내가 낸시 랭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이 그러니까, 2006년 8월 상병 정기 휴가 때 서점에 꽂힌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이란 책이었고 당시 나는 미술의 기원에서부터 근현대까지 가볍게 훑어볼 수 있는 미술사 서적을 찾던 중이었다. 보통 역사를 다루는 서적은 두 세 권 서로 다른 작가의 책을 사 보곤 했는데, 작가의 특정 역사를 보는 시선이나 풀이에 따라 책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학원에서 중등부를 가르칠 적에 국어 말고 사회를 겸해 가르치게 되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교재나 교과서 밖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구입했던 서적의 내용들이 같은 나라의 시대를 말하는데도 너무 달랐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나쁜 것은 또 아니어서, 그저 다양한 시각을 두루 읽어내는 것이 보다 현명하겠다 생각해서였다.
  글을 다 읽고 난 후, 뭐랄까. 한국에서 미술사를 가지고 이렇게 가볍게 가지고 놀 수 있는 20대 작가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엄숙주의가 팽배한 문학계, 미술계 시장 안에서 모나리자와 마릴린먼로의 얼굴을 새긴 브래지어 한 장만으로 가슴을 가린 채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녀가 멋있었다. (그때 내 생각엔 엄숙주의에 대한 반항 그리고 대중들에게 보다 가볍게 미술을 가져가게 하고픈 어떤 목적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이번에 만났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였다.)
  그리고 마침 다른 글과 이미지들 사이에서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 있었는데, 패션 브랜드와 예술과의 코라보레이션 작업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무언가 쾅! 하고 폭발을 하게 되었다.(당시 쌈지 브랜드와 낸시랭의 코라보레이션을 진행했었다) 그것이 조만간 새롭고 거대한 어떤 흐름을 예언하는 어떤 단서였기 때문이었다. 

  낸시 랭의 작업 자체가 내게 어떤 큰 영향은 미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예술이란 것 혹은 아트웍이라는 것은 개인적 인생에 대한 은유이고, 그 모든 작업이 나와 교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당시에 그 과정을 통해 순수미술 영역으로의 공부와 유학을 결심하고 연극과의 이별을 결정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결국 전역 후 순수미술로도, 유학으로도 이어지질 못했지만 다른 길로 나아가게 되었지만 또 현재의 내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시발점이 되었던 작은 불씨 중에 하나였음을 얘기할 순 있겠다.


역사
 으으으음,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진중권도 알타미라와 라스코 벽화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낸시 랭은 "소유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욕망의 재현"으로 보았고 진중권은 그와는 또 성격이 다른 "주술적 의미"로서 보았다. 하지만, 결국 몇 해 전 그들 벽화에 대해 고고학계에서 그림이 그려졌던 이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밝혔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동굴이 깊고 지독하게 어두웠던 것과 관련이 있었는데 아, 그게 주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트랜스 상태 그러니까 최면 상태에서 이뤄진 신기루를 그렸다는 설이었다.(그게 깊숙한 곳에서의 호흡곤란과도 연결이 되었고 또, 당시 벽화 속의 동물들을 '먹을 것으로 삼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찾아내었던 다른 동굴 벽화들도 같은 맥락을 띄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어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이상에야 결국 확정할 순 없을 것이다. 요코야마 유지인가, 일본인이 쓴 어떤 책은 또 당시의 크로마뇽 인이 실재적인 예술로서의 행위로 보고 집필이 되었다 한다.(이러니 결국 많이 봐야만 다양한 가능성의 과거를 읽을 수 있다..)